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사용’이라는 이기심을 숨기곤 합니다.
사랑을 받으려 하면서도, 그 사랑을 나를 위해 활용하려 합니다.
자신을 상대방 보다 더 사랑하는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혼도, 심지어는 신앙까지도 결국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탓입니다.
겉으로는 사랑이라 말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매우 날카롭게 우리의 죄성을 폭로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께서 인간이 형상을 만드는 행위의 본질을 “너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들추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를 위해 하는 일들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1계명과 2계명을 혼동하곤 합니다.
1계명이 하나님만을 예배의 유일한 ‘대상’으로 요구한다면,
2계명은 그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 예배해야 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그러니까 바알이나 아세라의 우상을 만드는 것은 1계명에서 다뤄져야 하는 범죄입니다.
2계명은 하나님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 격하시키고 내가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집중합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객관적 지식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존재처럼 사물화 하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의 관계가 아닌 대상화된 형상으로 인지하려 애쓰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내 유한한 이성과 감각의 인식 아래에 두어,
내가 필요할 때마다 그분의 성품을 활용해 꺼내어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욕망이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께는 형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비유나 형상으로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일한 존재 양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간의 이해 수준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간 수준의 경험적 예화를 사용하려 한다면
(예를 들어 세 잎 클로버나 물 분자와 같이),
그 순간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나’를 위해 형상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실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에게 완전히 불가해한 분으로 남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걸까요?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계시된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설명하면서 질투와 정의와 공의, 사랑과 자비와 오래 참음 등
유한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그것은, 인간이야 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줄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바람이 불고 있는 지를 보여주듯,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의 영광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그것은 사람이 창조된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돌이나 나무나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인간이야말로 유일하신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삼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타락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과 사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여 사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타락한 죄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하나님은 창조의 목적을 완수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통치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그분의 온전한 순종과 십자가의 삶으로 증명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들의 십자가 은혜를 입혀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눈앞에 아들의 형상으로 발견되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형상이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2계명의 진정한 요구와 그에 대한 진실한 순종은,
단순히 집에 불상을 두지 않거나 십자가 목걸이에 집착하지 않는 정도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내 삶의 목적이 ‘나의 안위’에서 ‘그리스도의 존귀’로 옮겨질 때,
우리는 비로소 2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갈 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