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이번 주부터 공과의 형식을 변화됩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가스펠 프로젝트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되
우리 교회 아이들의 실정과 상황에 맞게 구성하려 합니다.

설교에서 다뤘던 내용을 중심으로
삶의 내용을 나누고 적용하는 것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존에 드렸던 본문의 내용에 대한 정리는 그대로 드리되
그 뒤에 아이들과 나눌 질문지를 공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님들께서는 본문의 내용과 설교 내용을 참고해
대화를 나눠주시면 되겠습니다.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12과 욥기입니다.

욥기는 욥에 대한 소개로 시작됩니다.
욥은 의롭고 흠이 없으며,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자녀들의 생일날에도
그는 잔치를 마치면 혹시 자녀들이 지었을지 모르는 죄를 위해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욥의 의로움은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사실이었습니다.
천상회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그러자 사탄은 하나님의 이야기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욥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이익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이야기는
단순히 욥의 신앙에 대한 도전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역시 자기 백성과 사랑이 아닌 이익으로 묶인 관계를 맺는
이방 신과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탄의 제안에 따라 사탄이 욥이 가진 것을 치게 하십니다.
욥은 앞서 등장한 그의 프로필의 내용 중 욥 자신 외에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 때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욥의 고난은 끝나지 않습니다.
사탄은 욥의 신실함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하나님께
욥의 몸을 친다면 그가 하나님을 욕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제안이 허락되어 욥의 몸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로 뒤덮이게 됩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욥은 기와 조각을 들어 그의 몸을 긁습니다.
욥의 아내가 이 상황에서도 순전함을 지키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말할 때
욥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의미심장한 것은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욥기는 넌지시 욥의 마음에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이 생겼음을 암시합니다.
이를 증거하듯 욥은 복만이 아니라 화, 재앙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 욥의 소식을 각지에서 듣고 욥을 위로하기 위해 약속하고 찾아온 세 친구는
욥을 보고 통곡하며 7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 침묵의 위로 속에서 욥은 정직하게 자기의 상처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이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의 인생에서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침묵의 시간이 끝나고 욥은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모든 말을 쏟아놓습니다.
그러자 함께 침묵하던 친구들 역시 입을 엽니다.
욥에게 없는 지혜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실로 너무 어리석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제외하고 욥기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과
욥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이 아는 욥의 프로필,
그가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선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이 세상엔 오직 인과응보의 법칙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로가 아니라 비난을 선택합니다.

여기에 욥기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위로보다 쉬운 비난을 선택하는 우리를 욥기는 욥의 편에 서게 합니다.
거기서 우리 안에 있는 욥의 친구의 부당한 비난을 듣게 하고
거기에 분노하는 욥의 언어를 따라 말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욥의 친구에게 저항하게 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논리를 거부하고 욥은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합니다.
신랄한 언어로 하나님께 탄식하며 왜 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이야기를 잘라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놓으셔서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욥의 말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그 질문 중에 욥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너는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본 적이 있느냐,
눈 창고에 들어가본 적이 있느냐,

사람인 욥이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리 없습니다.

그게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생각과 이성, 논리를 넘어서는 무한, 무궁,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야생 동물들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 중 특별히 리워야단과 베헤못에 집중하십니다.
두 짐승 모두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동물입니다.

거기에 두 번째 메시지가 있습니다.
두 짐승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통제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 두 가지 메시지와 함께 하나님은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너보다 크고 위대해 네가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우리에겐 썩 감격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리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보다 크고 위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고
욥에게 그런 고난을 허락하시는 게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답하실 것입니다.

그 크고 위대하시며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먼지와도 같은 우리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그 사랑을 알 때 우리는 욥처럼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내가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 말씀하셨던 아버지에게 버림 받아 십자가에 달려보셔서
그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고통이라는 문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만나는 것,
욥기는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나눔 질문>

1.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내가 겪은 가장 큰 고통 혹은 가장 억울했던 혹은 하나님께 서운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그 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3. 오늘 말씀을 들을 때 떠올랐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4. 오늘 들은 말씀의 제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5. 오늘 들은 말씀으로 기도를 해본다면 어떻게 적을 수 있을까요?

 

<결론>

그분은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시는 무한, 무궁, 영원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때
비로소 우리는 티끌과 재와 같은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망한 것 같은 그 고난이라는 문을 통해
더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평안을 우리 아이들도 맛보게 되길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