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처음이신 분들을 위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야기할 이러한 내용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따금 카톡 단체 문자로 날라오는
“따라야 할 좋은 조언, 유익한 습관 몇가지” 와 같은
그런 류의 ‘좋은 소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다른 어떤 종교적 메시지와도 다릅니다.
따라서 이 좋은 소식이 어떤 소식인지 선명하게 하기 위해,
“좋은 소식”을 이야기 하기 전,
먼저 “안좋은 소식”부터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 안좋은 소식, 우리의 현실…
안좋은 소식이란 우리의 현재 상태,
즉 현실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나 이미 큰 인생의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자녀 양육의 문제, 생계의 문제 등 개인사의 문제 뿐 아니라
정치적 혼란, 경제적 불안정, 계층적 단절, 사회적 분열과 같은 사회 문제들도
현실의 큰 문제로 우리에게 닥쳐있습니다.
이런 문제들도 극복하기 어려운 큰 문제들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안좋은 소식”이란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서 모든 문제들의 원인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에 언급한 문제들이 왜 생겨나는 것인지 원인을 알아야 그 문제를 해결하고 해소할 수 있습니다.
# 인생의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인생의 문제들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서 시작됩니다.
탐욕, 시기, 분노, 거짓, 쾌락, 이기주의 등, ‘나’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고 싶은 욕심이 모든 문제의 근본 실체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스스로가 주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반역을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락한 본성으로 발생하는 것이 ‘죄’입니다.
꽃이 줄기에서 끊어지고 꺾여지면 그때부터 시들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듯,
생명의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벗어나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였지만, 사람을 다스리게 된 것은 결국 사망이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인생은 비참함과 애통함이 가득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몸부림칠수록 더욱 죄어오는 덫, 올무와 같습니다.
# 문제 속으로 구조대가 왔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죄와 사망과 비참함에 빠진 우리를 버려두시지 않고 구원하시려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함정에 빠져 있는 사람, 덫에 걸린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오직 외부의 도움만을 기다리게 되듯,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 갈 수 있을 만큼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와 건져주시는 방법 외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 그분의 이름입니다.
#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죄인 된 우리를 구하시려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대신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탐욕적이고 반항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며 반역한 인간의 죄를 대신 속량하기 위해,
우리대신 기꺼이 사망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타락과 탐욕과 반역으로 범죄하여 사망에 던져진 인간을 대신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쏟아주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아직 죄인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먼저 사랑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으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희생제물로 삼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을 죄와 사망과 비참함에서 건져내었습니다.
우리 대신 순종을 행하시고, 우리 대신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모든 공로와, 그렇게 얻게 된 의로움은
이제 다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것이 되었습니다.
#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 아닌가?!
예수님은 인간을 대신해 생명을 쏟아주셨으나, 그는 죽고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그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이에게 약속한 생명’을 얻어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타락한 죄인들 중 누구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었기에 아무도 얻지 못한 약속이었지만,
순종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생명을 입으셨습니다.
이 부활이야말로 인간에게 닥쳐온 사망을 완전히 이기시고 해결하셨음을 증명하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부활로 열매 맺은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명도 부활도,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것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 은혜로 얻게 되는 것?
만약 사람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만나뵐 수 있다면, 천국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심지어 믿음이나 내면의 힘이나 진실함, 착함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얻게 된 공로와 의로우심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자력으로 얻게 된 것이 아닌 예수님의 공로로 얻게 된 이러한 생명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주의 은혜로 얻게 된 새 생명과,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천국 백성이자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더이상 인정받기 위해서나, 구원받기 위해서 선행을 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얻게 된 생명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자유롭게, 사랑하며 순종할 수 있습니다.
자원함과 사랑과 순종. 이것은 완전한 변화입니다.
우리의 순종과 선한 행동은 감사함과 사랑을 동기로 실행될 때에야 처음으로 참으로 선하게 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듯,
예수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되심’을 얻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는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천천히 닮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섬기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세상을 섬기고 봉사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의 노예여서 종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들임에도 ‘종’이라고 불립니다.
은혜로 얻게 되는 것. 그것은 분명한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의 삶은 선하고 의로우며 기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 이제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삶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호기심은 좋은 시작이 될수 있지만, 당신에게는 삶의 변화를 돕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은혜의 깊이와 크기를 알아가며,
더 깊은 은혜에 잠겨본 사람들의 모임에 연결되고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하나하나 부르셔서 공동체로 이끄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좀더 세밀한 이야기들을, 좀더 내밀한 이야기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직접 만나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뉴시티광염교회는 당신이 예수님의 부활을 현실적이고 그리고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함께 탐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문제와 고민과 해결에 대해 당신과 함께 이야기하고,
당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당신의 진정한 행복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연결시키고 싶습니다.
뉴시티광염교회는 당신에게 그런 공동체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