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에서 아브라함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릅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앞두고 두 형제는 굉장히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두 형제가 함께하는 이런 모습은 아브라함이 꿈에서도 그리던 모습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실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단 한 가지 마음의 짐이 있다면 그것은 70여 년 전 떠나보내야 했던 아들 이스마엘이었기 때문입니다.

70여 년 전 아브라함은 매몰차게 아들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어떤 후원이나 밑천, 심지어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물 한 동이와 떡 한 덩이가 전부였습니다.
광야로 내버려 져야 하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70여 년 전 그날의 일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정말 가슴에 사무치게 아픈 일이었습니다.
아픈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살리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할 테니 안심하고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기에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삭을 죽이려 결심했던 것과 동일한 크기의 아픈 결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들을 버렸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레위기 16장을 보면 속죄일 예식 때 염소 두 마리를 준비합니다.
한 마리는 죽여서 여호와를 위해 그 피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해 구별한 나머지 한 마리는 산채로 광야로 내어버림으로써 속죄합니다.
한 마리는 내어버리고, 한 마리는 죽여야 하는 예식이 정확하게 아브라함이 순종해야 했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두 마리 염소는 모두 구속사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리아산에서는 아브라함을 멈추시고 죽임당할 이삭을 대신하여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날 아브라함은 죽음에 던져졌던 이삭을 다시 얻었습니다.
그러나 버려야 했던 아들 이스마엘은 이후 7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다시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있어 자신의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슬픔이 이스마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마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었을 리는 없겠지요.
광야로 내쫓겨지던 그날 이스마엘은 어머니와 광야 한복판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마엘의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와 어머니 하갈에게 샘을 주시고 모자를 살려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가 광야에 버려져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그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기 위해 아들의 부르짖음은 외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울부짖으셨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을 외면하시고 끝내 사망 가운데 버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대신 버림받으심으로써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건져졌습니다.
마치 이삭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던 것처럼,
이스마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버림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임종을 앞두고 서자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줍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면 “첩들의 아들들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직역됩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에 얻은 아내인 그두라 외에도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갈과 이스마엘을 포함하는 표현으로써 ‘첩들의 아들들’이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받게 된 선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국 버려지지 않았음에 대한 마침표, 즉 아들 됨입니다.
그동안 광야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생명의 위협과 삶의 고됨보다도 더욱 이스마엘을 힘들게 한 것은 이제 더이상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버지라 부를 대상을 잃고 70여 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마엘에게도 일생에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날을 얻게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들 됨을 다시 얻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인제야 형제들 중 한 명으로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은 즐거움으로 아브라함은 마음의 짐을 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마엘처럼 아들 됨을 얻은 우리도 복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