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믿고 싶은 하나님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싶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친근하신 권선징악의 하나님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에게 상을 베푸시고 죄인들의 악행은 반드시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사람들은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당연히 자신의 자유로 행한 선악 간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땅에 넘쳐나는 불의와 불공정 속에서 손해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지켜야 하거나 선행을 행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종교성이라는 것은 이렇듯 권선징악에 대한 소망으로 구체화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작정과 섭리로써 인생을 운영하시는 모습을 보거나,
예정하신 백성들을 불러모으시고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이는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들을 지키시기 위하여 악한 사람들을 벌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하나님의 상을 받고 보호를 받고 구원받을 사람이며,
세상 사람들은 유기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사람들이라고 구별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런 경향 속에서 예정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선택받은 사람인가 누가 유기된 사람인가에 대한 식별을 향하여 흐릅니다.
그 결과 예정되었다 판단된 사람들에겐 동질감에서 나오는 관용을,
유기되었다 판단된 사람들에겐 적대감에서 나오는 혐오와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게 됩니다.
혐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일치감을 조성하는 강력한 수단이자 동기가 될 수 있기에 많은 리더들이 공동체의 단합을 위하여 흔히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이해는 매우 부적절한 이해입니다. 

물론 예정론에 대해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대다수 사람들의 위와 같은 인식이 아주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예정된 백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유기된 사람들에게 행악간 책임을 요구하시어 징계하시는 분이지요.
하지만 이는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닙니다.
성경은 예정된 자들이 유기된 자들의 사회와 대립과 반목을 하게 되리라는 점을 깨닫게 하거나 혹은 유발시키려 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닿는 대상을 우리가 감히 구분할 수 없음을 가르치려 하심입니다.
대표적으로,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이야기에서,
성경은 누가 예정된 자인지 누가 유기된 자인지 구별하는 기준과 관점을 획득하게 하려는 데에 목표를 두지 않습니다.
성경의 문예적 강조점은 오히려 발꿈치를 잡고 사람을 넘어뜨리는 사기꾼과 같은 사람이라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부패 하고 타락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영원하여, 선택된 여자의 후손보단 뱀의 후손에 더 가까운 발꿈치 잡는 자 야곱 같은 사람도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예정을 막아설 수 없음을 전달하는 것이 성경의 목적입니다.
그 사랑으로 은혜를 입은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도덕적 의로움과 행실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실은 모두 사망의 자녀이자 거짓된 아비 사단에게 속했던 사람들이었음을 폭로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사랑이 우리와 동일하게 패악한 죄인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누가 구원받고 누가 유기되는지에 대한 주제는 성경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성경의 관심은 오직 자격 없는 자에게 흘러가는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을 증명할 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예정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전달 목적이 우리에게 자꾸만 벗어나게 인식되는 이유는,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하나님과 우리가 믿고 싶은 하나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말하자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호칭은 같을지라도, 믿고 싶은 하나님과 성경의 하나님은 호칭만 같았을 뿐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시는지 묻는다면,
성경의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버러지 같은 야곱을 사랑하신 분이심만을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랑의 증인이요 수혜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 앞에서 세상을 향하여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마음의 선을 넘어 무한한 그 사랑을 들고 미지의 백성들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