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이사야 6장으로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말씀입니다.
이 일이 시작된 때를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라고 말합니다.

당시 중동 지방을 사로잡고 있었던 세력은 단연 앗수르 제국이었습니다.

무자비한 철권 통치와 공포 정치로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이들을
모두 제거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앗수르의 정책이었기에
앗수르의 먹잇감이 된 나라들의 선택은 단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조공을 바치거나 거기에 맞서다 사라지거나.

그런 앗수르로 인해 고통 받던 유다는 어느 날 평화로운 시기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웃시야 왕의 시대입니다.

웃시야 왕 때 유다는 강성하였고, 마침 앗수르 왕들은 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그 평화는 웃시야가 죽으면서 끝나게 됩니다.
새로운 앗수르 왕은 다시 정복 야욕에 불타 연일 침략을 진행하기 시작하는데
유다에는 웃시야 왕이 없는 것입니다.

이 위기 속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 곧, 왕과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계시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모습과 천사들의 찬양 소리를 듣습니다.

이 환상이 우리의 진정한 왕은 앗수르의 공격에서 우리를 막아주는
웃시야 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 왕들, 그들이 다스리는 강력한 제국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문제는 앗수르의 공격과 웃시야의 부재가 아니나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땅에 찾아와 이사야에게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 하나님이 높은 보좌 위에 앉으신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고, 그가 오직 한 분 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합니다.

천사들의 찬양 소리로 성전 문지방이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차게 됩니다.
이 천사들의 이름은 스랍이라고 소개됩니다. 스랍은 사라프의 명사형으로 불이라는 뜻입니다.
불과 연기가 가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장면을 이사야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유다 백성들이 아는 모습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의 모습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출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멸하시고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유다가 잃어버린 그 하나님의 모습을
이사야는 여기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이사야는 이제 망했다고 말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내가 거룩하신 만군의 하나님을 보았기에, 그 거룩하심 앞에서 죄인은 견딜 수 없기에 그는 절망합니다.

그 때 스랍 하나가 내려와 제단의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그의 죄가 제거되었다고 말합니다.
제단의 숯에 담긴 의미 때문입니다.
그 불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만이 아니라,
그 향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불이 죄와 악을 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멀리서 하나님을 보기만 했던 이사야는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전하라 하신 메시지는 매우 이상합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라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기름지게 하고), 그들의 귀를 무겁게 하고, 눈을 어둡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이사야는 지금 듣지 않을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는 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 무관심의 기한을 묻자 하나님은 유다의 패망과 이 땅의 황폐함, 포로됨까지라고 답하십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특징입니다.
이사야는 현재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듣지 않아 다른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지금 듣지 않는 이들이 들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루터기의 약속입니다.
그루터기가 자라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되는 그 날이
이 땅이 황폐해진 그 뒤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그루터기의 약속을 이사야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 32:3~4)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눈이 떠지고, 귀가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바로 한 왕이 나타나실 때입니다.

(사 32:1~2)
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이 변화가 진정한 기적임을 요한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수많은 기적 앞에서도 완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이들에 대해
요한은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
곧 듣고 보아도 깨달아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도 그 완고함을 버리지 않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일어나는 변화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들은 그루터기이시며,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연결되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예수님께 연결되어 우리가 아닌 예수님으로 인해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충만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품 안에 안긴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께 붙어 그분의 열매를 맺는 나뭇가지로 사는 것,
그게 바로 앗수르를 두려워하며, 웃시야를 붙잡는 것밖에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과 여기 함께 있는 것, 함께 사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나눔 질문>

1.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엄청난 두려움 혹은 절망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나요? 그 때는 언제인가요? 또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요?

 

3. 하나님보다 큰 것은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4. 내 믿음의 행동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어떤 마음이 들까요? 거기에 오늘 말씀은 어떤 위로를 주나요?

 

5. 무슨 업적과 성취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으로 인한 열매를 맺는 가지로 사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주나요?

 

6. 오늘 말씀으로 기도해 봅시다.

 

 

<결론>

앗수르를 막기 위해, 웃시야를 붙잡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 앞에서 재앙이라며 절망하는 우리의 죄와 악을 제하시고
그분의 계획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계획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은 가지가 되어 내가 아닌 주님으로 인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전히 저마다의 앗수르와 웃시야로 고민하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충만하신 그 주님을 만나
자녀 됨과 가지 됨을 누리는 이 시간이길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