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비열함과 비겁함이 누굴 닮았는가 했더니, 알고 보니 아버지 이삭을 닮은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나오는 이삭의 이야기는 조용하고 온순한 믿음의 사람 이삭을 다시 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흉년을 만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거주하려던 이삭은 자신의 재산과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기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시절이었기에 이삭의 걱정은 결코 과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이삭이 리브가를 누이라고 거짓말한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이었습니다.
위기 시 나 하나 살자고 아내를 버릴 준비부터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도 포장할 수 없는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이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이삭의 이 이야기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이 행동이, 이미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도 두 차례나 반복됐던 동일한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잘못은 비록 이삭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로서 각각 80년 전, 60년 전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창세기의 내용들은 구전으로 대대로 전달되어오다가 모세에 이르러 성령의 감동으로써 계시가 기록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삭은 분명히 아버지로부터 모든 내용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이 지우고 싶었던 최악의 순간을, 이미 너무나 자세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아브라함의 잘못과 실수를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잘못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습니다.
몸으로 나오지 않는,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지식이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이삭에게서 성경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겹쳐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아브라함의 잘못이 떠올려지는 이삭의 거짓말 사건을 앞에 두고
성경이 아브라함의 순종을 칭찬하며 그것을 빌미로 이삭을 축복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은 전혀 그런 적 없었다는 듯,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에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실망스러운 순간을 그대로 답습하는 이삭의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의 순종을 언급하시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아이러니한 넌센스입니다.
순종과 거리가 멀었던 아브라함의 실수를 떠올리게 하시면서 동시에 아브라함은 순종했다고 평가하시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혹시 일종의 반어법으로 아브라함의 불순종을 폭로하시려는 것일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평가하신 내용을 두고 우리는 결코 과대 포장된 평가쯤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평가하셨다면 그것은 분명,
아브라함이 순종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진실로 그를 온전히 순종한 자, 하나님의 기준에 부족함 없이 의로운 자로서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아브라함을 모든 명령에 순종한 의로운 자로 바라봐 주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 대신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순종을 완성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구제 불능의 사람들을 바라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사랑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전적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그것을 그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약속을 이삭에게도 하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이삭을 축복하시겠노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가지셨던 동일한 관점과 시선으로써 이삭을 바라보시겠노라고,
그리고 그 아들 야곱을 바라봐 주시겠노라고,
그리고 나아가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봐주시겠노라고 선언하심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그 신비로 우리를 바라봐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은혜는 언제 필요한가 하면
실수와 잘못과 범죄와 죄악이 답습되고 반복될 때,
그래서 스스로는 더이상 가망이 없음을 깨닫게 될 때,
나의 능력 없음이 폭로될 때,
그때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나는 왜 또 넘어지는가’
자신의 나약함에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이 믿어진다면,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을 의롭다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