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던 거짓말의 댓가는 그의 생각보다 가혹했습니다.
이는 80여 년 전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간의 브엘세바 언약을 파기시키는 행위였습니다.
당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것’ 한 가지만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약속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블레셋 사람들은 언제든지 이삭을 내어쫓을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이 리브가를 누이라고 거짓말했던 이후로도, 이삭 일행은 그랄 땅에서 최소 15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이는 이삭의 거짓말이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이삭을 ‘약속을 파기한 보잘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하였고, 자신들의 위협이 되기는커녕,
자신들과 동류이거나 그보다 못한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한 결과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어느덧 이삭을 이웃으로 여겼고, 이삭은 그들 사이에서 땅을 얻어 농사를 지을 만큼 정착했습니다.
어쩌면 이삭에겐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서 위화감 없이 정착하여 지내던 이 시간들이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감 있는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삭을 찾아와 복을 주시자, 이 모든 화평의 시간은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아무런 노하우 없이 도전한 첫 농사에서 100배의 소출을 얻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거부가 되어버린 이삭을 더이상 그들의 이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시기는 이삭을 ‘계약을 깨트린 외지인’으로,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갈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게 만들고
블레셋 공동체에서 그를 추방시키게 만들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에게 말로 경고하기에 앞서 그가 사용하던 모든 우물,
곧 아브라함이 그들과 언약을 맺어 사용하였던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꾸어버렸습니다.
치사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쫓겨난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메꿔버린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팝니다.
그 위치에 우물을 다시 판다면 샘의 근원을 얻는 것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삭은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우물은 계약이 파기된 이 시점에, 소유권을 확보하고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우물 외에 새로운 우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우물을 판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 곳이나 땅만 깊게 판다고 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번에도 곤란에 처한 이삭에게 복을 주시고 우물이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제 좀 살겠다.’ 싶은 마음도 잠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직접판 우물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삭은 우물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빼앗긴 우물들의 이름을 에섹과 싯나라고 짓습니다.
에섹과 싯나는 ‘다투었다, 싸웠다, 시비가 붙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우물을 양보한 게 아니라 양보하지 않으려고 다투고 싸우다가 결국 강제로 양보 당한 것입니다.
이삭의 삶은 얼핏 생각하면, 손대는 일마다 성공하고, 마음씨 좋게 늘 양보할 줄 아는 평온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온 것만 같았으나,
막상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삭의 인생이 언제나 평온하고 평탄한 삶은 아니었음을 새삼스레 알게 됩니다.
이삭의 삶은 양보하는 삶이 아니라 대부분 이삭의 뜻과 상관없이 강제로 양보를 당하는 삶이었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거짓말 이후로도 15년 이상 안정적으로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어느 날 갑자기 잃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삭에게 예기치 못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 때문에 이삭은 갑자기 얻은 모든 재산을 순식간에 잃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복은 복인데 복이 아닌 것 같은 복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런 류의 복 주심을 반복합니다.
복을 받아 형통한 듯하지만, 곧 빼앗기게 되는 그런 류의 복 말입니다.
공동체에서 쫓겨난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하나님은 우물에서 샘이 터져 나오는 복을 주십니다.
그 우물들은 잠시후면 곧 빼앗기게 될 우물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은 이삭으로 하여금, 빼앗기지 않았던 우물 르호봇을 넘어,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인 약속의 우물 브엘세바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진정한 복에 이르기까지, 복이 아닌 곳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시는 복이었던 것입니다.
그 복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신다면,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빼앗기지 않는 우물을 넘어 진정한 복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