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내용>
오늘 말씀은 호세아 3장 1~5절, 자기를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고멜을 데려온 호세아 이야기입니다.
호세아가 부름 받을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의 이름처럼 여로보암을 따라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래 없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많은 부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호 12: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그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복을 그들의 의의 근거로 삼아 우상숭배와 악행을 고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에도 복을 받은 부유층들은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는커녕 그들의 것을 착취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이 많은 재산을 주셔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자들로 여겨
어떠한 제한도 없이 그들의 악한 욕망을 채운 것입니다.
그 분위기를 깨기 위해 하나님은 호세아를 부르십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게 되고
하나님은 그 세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첫째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이스르엘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아합의 집을 끝내고 청산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시작하시기 위해
예후를 세우셔서 이세벨을 죽게 하신 곳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그 이세벨이 섬겼던 우상을 좇아가고 이스라엘은 그 뒤를 따릅니다.
하나님은 그 이세벨처럼 너희를 멸망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으신 것입니다.
둘째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루하마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 앞에 부정어 ‘로’를 붙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마지막 셋째 아이의 이름은 로암미입니다.
이스라엘은 ‘암미’, 내 백성이 ‘로’, 아니라고 하나님은 그 아이의 이름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고멜이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고 나서야
호세아는 이 모든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고멜의 이야기가 곧 이스라엘의 이야기이며 그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겨 로루하마, 로암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서 고멜을 사랑하라, 그와 같이 내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라 말씀하시며,
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그 말씀을 따라 고멜을 데려와 부부 관계를 회복한 호세아처럼
하나님은 이스르엘을 심판이 아닌 심는다는 뜻의 새로운 이스르엘로,
로루하마와 로암미를 루하마, 암미로 변화시키십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를 섬긴 고멜이었던 이스라엘,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호세아의 헬라어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호세아로 우리를 찾아와 하나님을 떠난 음란한 고멜인 우리를 교회로 변화시키셨고
음란한 세 자식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를 그와 하나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인 새로운 이스르엘, 루하마, 암미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를 위해 호세아는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지불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의 몸과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게 정말 자기 생명을 거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진정한 호세아로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의 이야기로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돈의 액수가 아니라 우리의 공감이 우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 공감하는 자리로 부르셔서
우리가 우리의 죄악에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에 공감하게 하십니다.
그런 우리를 통해 그가 향하고 계신 수많은 로루하마와 로암미를
루하마와 암미가 되게 하시는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호세아서가 우리를 인도하는 메시지입니다.
<나눔 질문>
1.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내가 가장 공감하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나는 누가 아플 때 아프고, 누가 기쁠 때 기뻐하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3. 내 사랑을 거부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4.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에 공감하게 하신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오늘 말씀의 내용으로 기도문을 작성해 봅시다.
<결론>
포기할 수 없는 불붙는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자리, 그 십자가로 보내셨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했던 우리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공감하고,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워하게 됩니다.
그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의 공감과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변화될 것입니다.
호세아서가 인도하는 그 자리로 나아가는 이 시간이길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