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맺었던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브엘세바 언약은
훗날 이삭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 한 사건 때문에 산산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거짓말 사건’ 이후로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친근히 여기고,
이삭은 그들 사이에서 오래 거주하며 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그가 거부가 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삭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은 더 이상 이삭을 이웃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깨어진 브엘세바 언약을 근거 삼아 모든 아브라함의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리고 이삭을 공동체에서 쫓아냈습니다.
이삭은 급한 대로 그랄 땅 근처 골짜기들을 전전하며 아버지의 우물들을 다시 파서 사용하려 하였으나,
아브라함의 우물만으로는 소유권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없기에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우물을 파는 일에 사활을 겁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계속하여 이삭을 쫓아와 아브라함의 우물만이 아닌 이삭의 우물까지도 빼앗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쪽은 계속해서 우물을 파고 또 한쪽은 계속해서 빼앗는 일이 반복됩니다.
매번 우물을 파내는 이삭에게 놀란 것인지, 질린 것인지 어느 순간 블레셋 사람들은 더 이상 이삭을 찾아와 해코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삭은 르호봇에서 시비와 다툼을 멈추고 번성할 조건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삭은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올라가버립니다.
그랄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교류가 아니고선 살아갈 자신이 없던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공동체에 대한 의존성을 완전히 버려버리고
대신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을 의존하기로 결심하여 이 모든 약속의 시작인 땅 브엘세바로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언약에 직면하려는 이삭은 그제서야 진정한 의미로 독립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삭의 독립은, 아브라함의 재산을 물려받았던 그때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죽고 유일한 가문의 수장이 되었던 그때가 아니라,
브엘세바에 이르게 되었던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삭은 그랄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기로 결정하였을 때 진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립도 그렇습니다.
직장에 취업했을 때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 분가했을 때가 아니라,
자녀를 낳고 가장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걸고, 언약의 말씀을 직면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존하여 살기로 작정할 때,
그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숙이란, 성화란, 세상의 가치관을 떠나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자립과 독립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삭이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향하자 놀란 것은 아비멜렉이었습니다.
이삭의 독립과 자립으로 드러난 각성은 아비멜렉을 긴장하게 했습니다.
말로는 ‘자신들을 떠나라’고 했지만 아베멜렉은 이삭이 정말 자신들을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비멜렉이 생각한 이삭은 거짓말쟁이에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삭은 그랄땅을 떠나지 못하고 그랄땅 언저리의 계곡을 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삭이 정말로 그랄땅의 영향권을 떠나 브엘세바로 가버리자 아비멜렉은 당황했습니다.
이는 마치 일본이 2년 전 경제 보복으로 반도체 공정의 핵심 원자재인 포토레지스터와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을 금지했을 때와 유사한 상황입니다.
일본은 한국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싹싹 빌며 머리를 조아리고 일본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리라 기대했겠으나,
대한민국은 오히려 반도체 원자재의 일본 의존도를 넘어서버리고 독립을 해버렸습니다.
아무리 손익 계산을 해보아도 득보다 실이 많아져 당황한 일본처럼, 아비멜렉의 속은 타들어갔습니다.
이삭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싹싹 빌며 자신들 밑으로 기어들어오리라 생각했던 아비멜렉은
일이 꼬이게 되자 오히려 이삭을 먼저 찾아와 평화조약을 제안합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가치와 동일한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똑같이 두려워하고,
그들이 의존하는 것들을 동일하게 의존하며,
그들의 처세술과 동일하게 거짓말로 꼼수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세상은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그들 사이에서 아무 문제 없이 15년 이상 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을 때,
이삭은 더 이상 그들 사이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심어주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과 동일한 것을 의존하고 동일한 것을 두려워하며 동일한 가치관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화란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