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범죄를 함께 저질렀다고 짐작되는 두 용의자를 각각 격리하여 심문하면서,
담당 검사가 “만약 둘 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면 비교적 가벼운 형벌인 징역 3년을 구형하겠지만,
만약 둘 다 부인한다면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걸어서 반드시 3개월을 구형하겠다”고 밝히고,
“그러나 한 사람은 순순히 자백했는데 다른 사람이 부인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정직에 대한 보상으로 방면해 주고,
부인한 사람은 최고형인 15년을 구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자백을 제안하면,
용의자들은 공범을 믿지 못하고 결국 죄를 자백하게 된다는 딜레마입니다.
만약 동료가 자백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만 있으면 동지의식을 발휘해 함께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고 3개월 구형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만약 동료가 혼자만의 방면을 위해 배신을 하고 자백을 하게 될 경우, 자신은 15년형을 구형받는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백을 결정하는 것이 우월 전략이라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 다 가벼운 형량을 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은 결국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하게 됩니다.
미래 일을 알 수 없고,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기에,
세상을 믿을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 탐심은 언제나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심리가 발동되는 동안에는 언제나 최선의 결과란 얻을 수 없게 됩니다.
복잡한 사회 관계망 속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다수의 의견을 모아 결정을 하게 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사회적 합의로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가 더욱 힘이 듭니다.
사람은 본성상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위대한 국민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창세기 27장에 이삭의 가족들도 그러했습니다.
각자 자기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이삭대로 자신의 유약한 과거를 답습할 아들이 아닌 강하고 진취적인 아들에게 가문을 맡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삭의 눈에는 장자권을 빼앗으려는 야곱의 모습이 늘 자신의 우물을 빼앗으려던 블레셋의 모습과 닮아 보였을 겁니다.
리브가는 리브가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해내고자 하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두 아들은 서로 자신의 탐욕에 충실하여 서로를 속였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에게 양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독식하려 했고,
야곱은 그런 에서에게서 축복을 갈취했습니다.
그러니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상대방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행동들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인 이삭은 장남인 에서만 몰래 축복하려던 계략에 실패하여
둘째 아들에겐 사기를 당하고, 아내에겐 배신을 당했으며, 첫째 아들에게 원망만 받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어머니에게 있어 버림받은 아들 신세가 되었고,
애초에 훔친 축복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리 없었던 야곱은 무일푼으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벌어질 일들을 확신할 수 없기에,
나름의 합리적 정당성을 다하여, 다른 말로는 이기적 탐심을 위하여 행동하고 결국엔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물들의 이기적인 일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선하게 이루어가십니다.
성경엔 하나님의 선하신 반전의 섭리하심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야곱이 입어야 했던 장남의 옷도,
저주는 나에게 돌리겠다던 리브가의 언급도,
모든 감각이 가려져 장남인지 구별하지 못했던 이삭의 눈멂도,
동생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에서의 맹세도,
모두 그들에게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신의 옷을 입히시고,
우리의 모든 죄과를 자신에게 돌리시며,
죄인은 죽어야 한다는 언약의 저주 앞에서 도리어 우릴 위해 죽임당하셨고,
우리의 죄과를 돌아보지 않으실 뿐 아니라 아예 뒤로 던져 잊어버리셨습니다.
성경은 믿을 수 없는 인간의 부조리함 속에서,
도리어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영광을 들춰 보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험난한 것이거나,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지 못하기에 패악하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지 못하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의 앞에서 최선의 삶이 펼쳐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