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리브가가 이삭과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사건 이후,
폭탄처럼 터져버린 이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봉합했는지, 성경은 별다른 설명 대신 리브가와 이삭의 대화를 보여줍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자녀들의 결혼 문제를 걱정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자신의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이삭에게 털어놓지 않고,
자신이 마음속에 이미 내려놓은 결정을 이루기 위하여, 걱정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리브가의 목적은 야곱을 에서의 분노로부터 피신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전혀 관련 없는 며느리들 이야기를 들먹인 것입니다.
물론 이삭에게도 리브가에게도 에서의 가나안 출신 아내들은 근심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에서가 야곱을 헤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에서의 며느리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두 아들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는 리브가의 걱정은 며느리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리브가가 며느리들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한 이유는 오로지 야곱을 라반에게로 피신시킬 명분을 얻기 위한 것이었죠.
자신이 세워둔 이 결정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을 컨트롤할 계략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것을 공작이라고 합니다.
리브가는 이삭을 공작의 대상,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전략적 수 싸움을 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과 대화는 하고 있지만, 심중엔 다른 꿍꿍이가 있습니다.
결정권을 지닌 남편 이삭을 자신의 계략대로 컨트롤하려는 시도에서 리브가가 보이는 모습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이후 아담을 죄악에 끌어들이려 주장하던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장자권을 경시하던 에서의 모습과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리브가의 행태는 가문의 수장이자 가장으로서 이삭이 가진 결정권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입니다.
에서와 리브가는 즉흥적이냐 계획적이냐, 감정적이냐 이성적이냐의 차이일 뿐,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가볍게 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죄의 본질에서는 동일합니다.
만약 리브가가 정말 야곱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이삭을 인정했다면,
리브가는 이삭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어야 합니다.
괜히 이야기 꺼냈다가 계획만 틀어지고 긁어 부스럼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속마음을 감춘다면 그건 신뢰가 아니라 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신뢰하며 마음을 열고 진정한 대화를 하다 보면 가능한 해결 방법 중 한 가지로 야곱의 피신 이야기도 언급될 수 있었을 겁니다.
혹은 더 좋은 방법들이 의논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 해결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에서 시작합니다.
에서의 분노를 피할 방도가 아니라, 에서의 분노를 해결할 방법을 이삭과 의논했어야 합니다.
사실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키거나, 이삭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요량으로 공작을 시도하기보단,
무엇보다 어머니로서 먼저 에서의 마음을 받아주어야 했습니다.
동생과 함께 에서를 속였던 부분을 사과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어야 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두리뭉실 덮고 넘어가려는 리브가의 태도에 에서는 분명 관계의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에서는 이후 오직 아버지의 마음만을 신경 씁니다.
며느리들에 대한 불평을 터뜨린 건 리브가였는데, 정작 에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들입니다.
새로운 며느리를 추가로 얻는다는 에서의 계획과 결정은
경솔하고 무책임한 결정이며, 이삭의 가정의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원인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자리는 없습니다.
사실 이미 가나안의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는 에서에게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지혜로운 어머니의 따듯한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에서의 경솔함은 리브가의 독선으로 인해 방치됩니다.
야곱을 떠나보낸 리브가는 정말로 두 아들을 잃고 만 것입니다.
리브가의 우려가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떠나보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야곱을,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이루어가실 민족 조성의 목적으로 브엘세바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에 창세기 27장에서의 폭탄 같은 사건들을 겪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이끄셨을 것입니다.
창27장을 가리고 읽어보아도 창26장에서 창28장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마치 창27장의 이야기가 끼어 들어가 있는 듯 말입니다.
성경의 관심은 도피에 있지 않고 민족을 이루어갈 가족의 등장에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신뢰한다면 애써 편법과 계략과 공작을 동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회피가 아니라 직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