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갑니다.
명목상은 배우자를 찾기 위함이었으나 실제는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는 중이었습니다.
야곱은 일흔일곱 평생을 복에 목말라 했습니다.
늘 야곱은 그저 몇 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가지게 된 형 에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에서가 가지게 될 것들을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무리한 방법임을 알면서도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는 무모한 시도를 감행했고
그 결과 그는 오히려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축복, 모든 것을 얻고 싶었는데,
지금 야곱은 자신이 바라던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든이 다 되도록 브엘세바를 벗어나 본적 없었으니,
길잡이나 수행원 역할을 해줄 동행 하나 없이 떠나게 된 야곱이 겪은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매 끼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가야 다음 마을이 나올지,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표류하듯 걷는 야곱의 피로감은 그의 마음만큼이나 피폐한 상황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곁에 없는 야곱의 상실감과 외로움은 한기처럼 뼛속까지 스며들어 한없이 서글픈 밤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인생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밤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돌배개를 베고 누웠다는 표현보단
오히려 반석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잠이 든 야곱의 꿈에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보여주십니다.
땅에서 모든 활로가 끊어진 야곱은 하늘 문이 열리고 그 하늘에 닿는 길을 통해 활로가 하늘에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늘에 닿는 길을 만드는 것은 그간 인류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도했던 것이 바벨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의 흩으심으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던 하늘에 닿은 길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길은 사람이 땅에서 하늘로 쌓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주신 길입니다.
그 길은 가려지고 숨겨진 그래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낡고 먼지 쌓인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천사들이 부지런히 왕래하며 일하는 분주한 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간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꿈에 보여주셨던 사닥다리는 야곱의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역동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길이었습니다.
마치 낮에도 별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어야 보이듯,
야곱은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인생의 시간을 맞이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두려울 정도로 감격한 야곱은 꿈에서 깨어
자신이 배었던 돌베개를 기둥으로 세워 그것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벧엘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베개로 삼았던 그 돌을 그토록 특별하게 여겼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돌을  주춧돌 삼아 하늘에 닿는 길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감히 마주할 수 있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인간과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돌은 장차 죄인들을 위해 하늘의 문을 열고 하늘의 길을 내실 성자 하나님의 예표가 됩니다.
곧 벧엘은 반석이진 그리스도 예수의 모형입니다.
그렇기에 활성화된 은혜의 사닥다리는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기둥으로 세워 벧엘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공간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아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고백이 아니라,
특별한 사건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아 우리를 만나주시리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사건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인생을 연합하여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밤을 맞이할 때,
그래서 활로가 보이지 않을 때,
지쳐 쓰러져 맨땅에 헤딩하듯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벧엘로 이끄십니다.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감격을 다시 발견하게 될 때 우리의 인생은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됩니다.
아들을 주신 분께서 그 모든 것을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벧엘을 기억합니다.
매시간, 인생의 모든 순간을 벧엘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막막한 인생 여정에 주께서 함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