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아내들을 위한 지참금 값으로 14년의 무보수 봉사 기간을 보낸 이후,
새로운 품삯 계산 방법을 조건으로 6년간 더 라반의 집을 위해 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도 야곱은 여전히 자신의 품삯을 위한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라반의 집을 위해 충성하여 봉사했습니다.
자신의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수작 부리는 일이 전혀 없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야곱은 점박이 양들을 철저히 격리해 라반의 아들들이 맡아 관리하게 하고, 자신은 오직 순색의 양들과 염소들만을 목축했습니다.
순색의 가축들 사이에서 얼룩무늬 새끼들이 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집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스스로는 오직 라반을 위해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야곱의 소유가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6년 만에 야곱은 라반과 그 아들들이 시샘하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20년간 천천히 쌓아 올린 부가 아니라 6년 만에 단기간에 이룩해낸 성과입니다.
아니죠. 야곱은 자신의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가 일절 없었으니 오직 하나님이 이룩해내신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을 고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야곱으로선 억울한 일이지만, 정당한 야곱의 품삯을 두고 아버지의 것을 빼앗아 가는 파렴치한 행동처럼 야곱을 흘겨보았습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가진 불만은 라반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뜩이나 손익 계산에 민감하여 품삯의 기준을 열 번이나 바꾸어 제시했던 라반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라반이 야곱을 데리고 있었던 것은 야곱이 여전히 자신에게 이익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익의 크기는 줄었어도 분명히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라반의 마음이 이제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라반의 안색이 변한 것을 야곱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습니다.
하란 땅에서 야곱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왕따를 당하며 버텨내는 것이 점점 힘겨워지는 야곱입니다.

현실의 암담함과 괴로움은 그 상황을 벗어나고 떠나도록 결정하게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실의 괴로움보다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더 크다면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버티는 것을 선택하게 되기도 합니다.
인생은 흔히 현재의 괴로움과 미래의 두려움 사이에서 선택하게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괴로움을 피해 떠남을 선택하든, 미래의 두려움을 피하여 머무름을 선택하든,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하는 선택은 회피일 수밖에 없습니다.
회피의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황을 바꾼다고 원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새던 바가지는 밖으로 나간다고 새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회피는 인생의 후회라는 상흔을 남기기 쉽습니다.
외로움을 피해 연애를 시작하면 건강한 만남이 되기 어렵습니다.
부모의 속박을 피해 결혼을 선택하면 인생이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두려움이 결정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회피로 인생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집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끌고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큰 리스크를 지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미래의 두려움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브라함은 떠남이 아닌 머무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래의 그 커다란 두려움을 이겨내고 떠남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미래의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실제와 그 명령의 선명한 실효성을 신뢰했기에, 그 확신이 두려움을 넘어서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확신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야곱의 결정이 그러했습니다.
하란을 떠나기로 하는 야곱의 결정은 현실의 괴로움과 미래의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는 ‘벧엘의 하나님이 하신 약속’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아내들을 설득하는 장면을 보면 이 확신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언제나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허락하신 것을 반드시 채워주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야곱은 확신했습니다.
아내들을 설득할 때, 야곱은
현실의 암담함과 두려움을 강조하여 공포심으로 그녀들을 떠밀어 고향을 떠나도록 종용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설득은 벧엘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 확신에 함께 하도록 초청함이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와 회피가 아닌,
담대함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확신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