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라반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가족들과 자신의 모든 재산을 이끌고 하란에서 도망쳤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삼촌 라반에게 서운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마음 같아선 시시비비를 가려보자고 한바탕 뒤집어 엎어보고 싶은 생각을 안 해본 것 아니겠지만,
그에겐 억울함을 푸는 것보다 가족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종처럼 부려온 라반에게 자칫하면 아내와 자녀들까지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야곱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1장에 따르면 종은 자유의 몸이 될 때 혼자서 떠날 수 있지만 주인에게서부터 받은 아내와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은 데리고 나갈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종이 아니라 조카였지만 라반은 야곱을 종처럼 부렸습니다.
라반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만큼의 사람이었고, 이에 야곱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았을 때 가족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고 싶은 많은 말을 모두 가슴에만 담은 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앓는 마음으로 야반도주한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이 하란을 떠났다는 사실을 사흘 뒤에야 알았습니다.
이는 라반의 아들들이 관리하던 양 무리가 사흘 길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인데,
마침 양털 깎는 시기라 라반은 자신의 양무리를 돌보는 중이었습니다.
야곱을 믿지 못해 자신의 재산을 분산 관리하던 라반은 야곱이 떠났다는 소식에 재빨리 집으로 돌아와 없어진 것이 있는지 집안부터 살펴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드라빔만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드라빔을 훔친 것은 라헬이었지만 이를 알리없는 라반은 야곱에게 모든 분노를 쏟습니다.
야곱이 아무 말 하지 않고 떠나자 라반은 자기 좋을 대로 야곱을 생각하고 판단하여 불필요한 오해까지 만들게 된 것입니다.
즉시 라반은 추격조를 조직하여 야곱 일행을 추적합니다.
야곱은 매일 50km 이상을 걸어 이미 열흘간 하란에서 500km 정도 떨어진 갈르엣 산에 이르른 상태였지만
라반은 하루에 100km 가까이를 행군하여 단 며칠 만에 갈르엣에 장막을 친 야곱을 따라잡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전날 밤 라반의 꿈에서 선악 간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라반에게 명령하신 상태였지만,
분노에 가득찬 라반은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고 계시니 해코지를 하진 못해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라반은 야곱에게 어찌하여 자신을 속였느냐고 반복하여 말합니다.
자신의 딸들을 폭력적으로 납치해가고, 그래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만들었다고 야곱에게 분을 냅니다.
하지만 사실 폭력적으로 야곱에게서 딸들과 자녀들을 빼앗아 가려고 추격해왔던 것은 라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막아서지 않으셨다면 라반은 야곱을 죽이고 딸들을 약탈하듯 끌고 갔을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생각합니다.
자기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도 그런 줄 압니다.
사람이 오해를 하거나 분을 내는 경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해란 사실 상대를 자기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들도 자기 같은 줄 압니다.
그래서 때로 침묵은 상대로 하여금 자기 멋대로 생각하게 하는 행동이 되곤 합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드라빔을 훔쳤다고 책망하며 자신의 마음을 훔친 야곱을 책망하지만,
사실 훔치는 사람은 야곱이 아니라 라반이었습니다.
자신의 친족인 야곱을 종으로 부려먹은 라반의 행위는
신명기 24장 7절 말씀대로 한다면 ‘종이 아닌 자를 종으로 유인하는 자, 곧 반드시 죽여야 하는 악인’인 것입니다.
이를 비꼬아 지적이라도 하듯 야곱은 라반에게 혹시 도둑질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침묵으로인해 라반의 마음이 도둑질당했기에 ‘반드시 죽으리라’는 그 말에서 야곱 자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라반 뿐 아니라 야곱도 가족과 자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에서 스스로의 온전함으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온전한 사람,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의 편에서 그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죽어야 할 모든 책임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담당케 하실 작정으로 야곱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켜주심 안에서 야곱은 당당히 라반에게 마음의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하고 완벽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우리 허물을 덮어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대속의 사랑과 덮어주시는 은혜가 우리를 당당하게 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