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라반과의 이별 이후 귀향하며 먼저 사람을 보내어 에서에게 자신의 귀환 소식을 알립니다.
그러자 야곱은 사자에게서 에서가 사백 명의 건장한 사람들을 이끌고 야곱에게 마주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라반과의 마지막 모습에서 야곱은 무장한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에서 앞에서는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입니다.
야곱은 지난 20년간 에서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늘 에서에 대한 생각이 그에게 짐이었고 두려움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그간 신앙적으로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 그분 앞에서만 맹세하며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왜 에서 앞에서는 그런 성장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야곱은 다시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혹시 야곱은 에서에 대한 두려움의 압박 때문에 이전의 모습, 즉 속이는 자 야곱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요?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에 에서에게 보낼 예물을 준비하는 야곱의 모습에서
잔머리를 굴리고 꼼수를 쓰며 계략을 꾸미던 20여 년 전 그 본성이 다시 발현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이긴 합니다.
야곱은 흠결이 많은 사람이고 여전히 부족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에서를 향한 야곱의 두려움은 그의 성장과는 무관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과 에서와의 관계가 라반과의 관계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라반은 가해자였지만, 야곱에게 에서는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반으로 인해 20년의 시간 동안 힘들어했지만, 에서는 야곱 때문에 20년의 시간 동안 힘들어했을 인물입니다.
아직 에서의 마음이 어떤지 야곱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야곱은 20년간 삼촌 라반의 유익만을 위해 일하며 자신의 사욕을 챙기려 한 적이 한 번도 없기에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와의 관계에선 결코 떳떳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에서로부터 장자로의 명분과 권리, 그리고 축복까지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원래 가해자로서 피해자를 대면하는 것은 훨씬 무섭고 힘든 일입니다.
아마 누군가는 ‘사과하고 책임지면 될 일이지 뭐가 그리 어려울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그 일에 책임과 용서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피해자의 얼굴을 대면하고 눈빛을 마주 보는 일이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겪은 마음의 상처와 그 상흔의 크기를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이 두려움을 갖지 못합니다.
만약 야곱이 에서의 얼굴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맑고 밝게 아버지의 집으로 귀향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뻔뻔함이 아닙니다.
야곱의 두려움은 자기가 에서의 마음에 남긴 상흔이 얼마나 깊고 아픈 것인지 알기에, 공감하기에,
그래서 괴로운, 그래서 두려운 염치인 것이죠.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에게 20여 년 전 자신이 도둑질한 그 복을 갚고 싶었습니다.
율법에서 도둑질한 것을 갚을 때는 갑절로 갚아야 합니다.
그 시절 야곱이 에서에게 입힌 상처와 피해를 계산하긴 어렵겠지만,
야곱은 갑절로 갚는 것 이상으로 에서에게 복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에게 보내는 선물들을,
8종류의 가축들로 총 550마리 이상 되는 재산을, 세 떼로 나누어 구성합니다.
그러니까 에서가 이끌고 오는 사백 명의 사람들은 야곱에게 오는 동안 세 번의 선물 무리를 만나야 합니다.
에서의 병력보다 많은 수의 짐승입니다.
야곱에게 도달하는 동안 에서의 무리는 거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야곱에게 다가올수록 잃어버렸던 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야곱의 지혜이자, 에서에게 잘못을 갚길 원하는 그의 진심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죄악을 대면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야곱 역시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다른 떼는 피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야곱이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할때에 두려운 얼굴을 대면할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지요.
예수 믿으세요.
그분의 십자가는 가리고 싶던 죄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