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드디어 에서를 만났습니다.
거리가 아직 먼데 야곱은 몸을 굽혀 에서에게 일곱 번 절하며 다가갑니다.
사실 야곱은 지난 밤 하나님인 줄도 모르고 밤새 싸우다 결국 하나님에 의해 골반뼈가 부서졌습니다.
이제 야곱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든 상태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절할 것 같은 통증을 참아내며 꾸역꾸역 일곱 번을 채워 에서에게 절을 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 ‘세바’는 완전을 의미하고 또한 맹세의 의미를 지닌 숫자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 절을 한다는 것은 봉신이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서 하는 행동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지난날 자기 잘못을 갚고 싶었습니다.
장자권을 빼앗음으로 인한 손해를 물질적으로 환산할 순 없겠지만, 그는 에서를 위한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들었던 축복의 언급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이 네게 굴복하리라’는 이삭의 축복을 원래 주인 에서에게 돌려주기 위해 야곱은 일곱 번의 절을 했습니다.
에서는 그런 야곱에게 달려가 그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 눈물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던 해묵은 감정을 씻어 내리는 용서였습니다.
이제는 둘 사이에 어떤 미움도 두려움도 마음의 앙금으로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앞서 보낸 선물에서 야곱의 진심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한눈에 보기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곱 번 절하는 야곱의 모습에서 측은함을 느낀 것인지,
빼앗긴 줄 알았던 복을 돌려받게 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되었기 때문인지,
에서는 야곱을 전적으로 용서하고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하게 자복한 야곱의 진심이 에서에게 닿았습니다.
야곱 이야기의 정점은 이렇게 아름다운 형제의 연합과 화해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과 에서 이야기의 이러한 결말은 한편으로 참 당혹스럽고 또한 당황스러운 결말입니다.
야곱과 에서 이야기의 시작을 생각해볼 때 가장 중요한 점 한가지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던 하나님의 계시가 성취되지 못한 체 남겨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셨었습니다.
이것은 야곱과 에서가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 싸울 때 하나님이 하셨던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 힘입었기 때문인지 야곱과 리브가는 감히 이삭과 에서를 속이려 하였고,
그 결과 이삭은 하나님의 성취하심에 놀라 떨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모습’을 기대하며 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큰 자로 작은 자를 섬기게 하실는지’ 잔뜩 기대하며 맞이하게 된 이야기의 끝에서
작은자 야곱이 큰자 에서에게 일곱 번 절을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황스럽습니다. 결국 작은자가 큰자를 섬기는 모습 아닙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인가요?
하나님의 계시도 좌절될 때가 있는 것인가요?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당혹감과 당황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대와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야곱이 섬김을 받게 되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되었을 테지만,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작은 자가 아니라 큰 자가 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이는 실패가 아닌 성취임을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살아남았습니다.
그에게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부서진 골반뼈는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은혜를 입은 것이 한낱 꿈이 아니라 실제였음을 증명하는 증거이자,
평생토록 기억하게 하는 은혜의 흔적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장자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인 것입니다.
나중된 자를 먼저된 자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생명과 복과 함께 그의 ‘장자 되심’도 야곱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큰 자로서 섬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은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이긴 자, 가진 자가 섬김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모두는 큰 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섬겨주어야 자녀는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의 통치는 언제나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겨주므로 일어납니다.
먼저된 자, 큰 자가 된 야곱은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천국에 있는 장자들의 모임에 우리를 참여시켜주십니다.
세상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우리를 큰 자가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