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평안히 가나안땅에 도착하게 된 야곱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세겜 땅에 제단을 쌓습니다.
하지만 제단을 쌓던 야곱의 바람과는 다르게 가나안 땅에서의 삶도 순탄하고 평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의 고난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세겜 땅의 여자들을 만나러 외출했던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성 우두머리인 하몰의 아들에게 유인되어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디나에게 푹 빠져서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아들 세겜의 성화에 하몰은 결혼을 요청하러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야곱으로선 하몰의 요청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엔 납치 결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고 그 경우 신부 측에 납폐금을 지불하고 결혼이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야곱으로선 일반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가나안의 히위 족속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가나안땅 사람들과 혼인을 맺지 않으려 특별한 노력을 해왔고,
야곱 본인도 아버지 이삭의 명령에 따라 신붓감을 찾으러 밧단아람에 다녀온 터였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상대들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은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딸 디나의 상태와 안전도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디나는 여전히 세겜에게 납치된 채 돌려보내지지 않았습니다.
디나의 마음과 의견은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거절할 경우 딸 디나의 안전도 문제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명도 위험했습니다.
아직 들에 나가 양을 치고 있는 아들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공격받아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야곱의 딸을 인질처럼 붙잡아둔 채 결혼을 요청한다는 것은 혼담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강압적인 구조를 만들어 놓고 결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사실 하몰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이 기회에 야곱 일족을 자신들의 민족에 흡수할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외동딸이 성폭행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이어 선택지가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고난과 위기를 동시에 맞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은 야곱은 들에 있는 아들들을 돌아오게 하면서 동시에 모든 구성원들을 잠잠하게 합니다.
‘잠잠했다’는 동사의 히브리어 문법은 히필형(사역형)입니다.
그러니까 타인을 잠잠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야곱 스스로 잠잠했다면 니팔형(재귀형)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가족 구성원들 모두를 잠잠하게 했습니다.
말 그대로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잠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야곱의 아들 중 레위와 시므온은 잠잠할 수 없었습니다.
레위와 시므온은 온 세겜 성읍 사람들의 할례를 조건으로 요구합니다.
야곱으로서도 결혼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할례가 최선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레위와 시므온에겐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디나를 욕보인 것은 자신들을 무시한 것과 같았으니, 이스라엘 일행에게 이렇게 대하는 세겜과 하몰과 이 성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레위와 시므온은 할례로 전투불능이 된 세겜성 사람들을 칼로 학살합니다.
그리고 노략질합니다.
물이 끓어오르는 듯한 악한 본성에서 발원한 꿍꿍이로 속셈을 가진 사람들의 부딪힘은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사실 야곱의 아들들도 잠잠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아니어도 하나님은 숨겨진 햇빛같이 선하신 의도를 이루어가실 분이십니다.
악인들의 꿍꿍이와 속셈이 부딪히는 가운데 그 모든 악한 시도들은 부서지고 진멸되어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를 기록하고 있는 모세는 익히 그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병사들이 공격해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선택지가 없는 선택의 순간에 그가 했던 것은 ‘잠잠함’이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보아 알지어다” 외치던 그의 심정은 그 누구보다 초조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새벽 밤새도록 바다를 갈라 그들에게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다에 길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 애굽 병사를 수몰하여 악을 진멸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이 경험한 그 ‘잠잠함’으로 모세는 야곱의 행동을 설명합니다.

위기의 순간,
편법과 불법밖에는 남은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며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행보가 되어선 안 됩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뾰족한 수가 없어 잠잠히 주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의 구원의 길이 되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