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밧단아람에서 20여 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오며 인생의 가장 큰 과제였던 에서와의 문제를 매듭지었었습니다.
라반과의 문제에 이어 에서와의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야곱은 이제 인생의 어려움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탄한 삶을 기대하며 꿈꾸던 세겜의 삶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에서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아직 딸 디나는 납치 구금된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세겜성 리더인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야곱에게 디나와의 결혼을 요구합니다.
거절할 수 없는 일방적 요구 앞에서 야곱은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활로를 뚫지 못한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잠잠히 기다리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묘수를 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인 할례를 그들에게 요구하고선 세겜성 사람들이 할례를 받자 그들을 기습하여 학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복수라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범죄자 집단으로 변모해버린 가정의 안위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졌습니다.
주변 가나안 족속들이 언제 이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 몰려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둑으로 치면 완생인 줄 알았던 집이 알고 보니 여전히 미생이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입니다.
활로를 찾아야 하겠으나 고난과 위기를 동시에 만난 그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활로를 뚫기 위한 수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가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 일은 벌써 30여 년이나 흐른 일입니다.
그리고 10여 년 전 에서와의 화해로 일단락된 일이기도 합니다.
야곱으로서는 잊고 싶고 덮고 싶은 과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트라우마를 다시 건드리십니다.
벧엘은 30여 년 전 야곱이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중 모든 것을 잃고 무일푼으로 노숙할 때 하나님을 만났던 곳입니다.
야곱은 다시 돌아온 벧엘에서 30여 년 전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하나님께 돌기둥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30여 년 전 그날의 은혜를 야곱 앞에 재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선 야곱을 축복하시는데, 그 음성은 또한 10여년전 얍복강가에서 야곱과 씨름하시던 그날 하셨던 축복 그대로입니다.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고 하셨던 말씀,
그때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야곱이 겪었던 사건들을 그대로 동일하게 야곱에게 반복하십니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것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반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야곱의 인생은 여태껏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일까요?
그러나 원을 그리듯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보이는 야곱의 인생은 결코 제자리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단순한 원이 아니라 용수철처럼 위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을 지녔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야곱에게 보여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을 복기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브니엘에서 복을 간구하던 야곱에겐 가르쳐주시지 않았던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야곱이 하나님께서 재연하여 주시는 그의 인생을 복기하며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며 보호하시고 은혜 베푸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입니다.
뾰족한 수가 없어 결정을 못 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던 그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신의 한 수’를 두어주시며 야곱을 위기에서 이끌어오셨습니다.
바로 그 신의 한 수를 복기해봄으로써 전능한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로하시고 다시 세우시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벧엘이라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벧엘의 하나님이 중요함을 고백하여 야곱은 그곳을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벧엘이라는 장소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위로 올라가십니다.
그렇기에 야곱도 벧엘을 떠납니다.
거주하라는 말씀에도 벧엘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벧엘의 하나님 안에 거한다면 그가 어디를 가든지 벧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벧엘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두어주시는 ‘신의 한 수’를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