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일행들은 세겜을 떠나 벧엘을 거쳐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헤브론을 향해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벧엘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진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야곱 일행은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야곱은 만삭인 아내 라헬을 위하여 에브랏을 출산 목적의 중간 거점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나절 정도만 더 가면 에브랏인데도, 라헬은 더 이상 에브랏까지 이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산의 고통은 야곱 일행의 발걸음을 길 가운데에 멈춰 세웠습니다.
극심한 통증에 라헬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렇게 출산을 고생하다가는 배 속의 아이가 생명을 잃게 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산파는 라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날 것이라고 격려해보았으나,
죽음에 가까워진 라헬의 두려움과 슬픔을 위로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라헬은 에브랏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들을 낳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끝내 모든 기력을 잃고 자신의 생명은 잃게 됩니다.
고통의 끝에서 슬픔의 열매처럼 살아난 아들,
그래서 라헬은 유언처럼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습니다.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새 생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삶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생명과 죽음이 해산의 고통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여 일어납니다.
어머니의 고통 없이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죽음의 고통과 맞바꾸어 세상엔 생명이 태어납니다.
때로 아이가 목숨을 잃거나 혹은 어미가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은 당시엔 흔한 일이었습니다.
라헬은 죽음의 고통 가운데 아이를 잃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생명을 잃는 것 대신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라도 아이를 지킬 선택을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라헬은 죽음의 고통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서라도 세상에 새 생명을 낳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라헬의 죽음으로 새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성경은 ‘라헬이 아이를 잃은 슬픔의 위로를 받지 않았다’(렘31:15)고 표현합니다.
아이를 잃고 나서 슬픔의 위로를 받느니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대신 던져 아이를 낳기를 원한 라헬의 슬픔과 고통은
그래서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으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의 은혜를 예표 합니다.
라헬의 고통과 죽음은 단순히 한 인물의 애달픈 개인사를 넘어 구속사의 깊은 고통과 슬픔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들레헴(에브랏)에서 태어난 메시야를 죽이기 위해 헤롯이 베들레헴의 2살 아래 아기들을 죽이는 장면(마2:18)에서도
라헬의 이 고통은 다시 인용됩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 속 고통과 슬픔과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랜 산고의 끝에 열매 맺듯 태어나게 되었음을, 라헬의 고통을 인용함으로써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라헬의 고통은 메시야의 탄생을 에표하는 것을 넘어 그의 죽으심으로 얻게 된 생명까지 바라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시며 일분일초가 소중한 그 식사 시간에 여자의 해산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16:21).
라헬이 겪은 해산의 고통으로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결코 슬픔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를 대신하여 고통 속에 태어난 아들 베노니의 삶이 결코 슬픔과 고통과 사망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오른손으로 붙잡아 세워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심을 기대하며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에서 ‘베냐민’으로 바꾸어줍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오른편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야곱은 베노니의 이름을 베냐민으로 바꾸어주며, 자신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선 그 아들이 슬픔과 고통에서 머무르지 않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사망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오른손으로 붙들어 구원하십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구하는 아들의 삶은 바로 그 은혜를 얻는 삶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 부릅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주셨던 그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바꾸어 죄인이 아닌 의인이라 불러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