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야곱의 명대로 형들의 샬롬을 물으러 세겜으로 떠났습니다.
평소에도 요셉에게 샬롬이라 말해주지 않던 이들에게 샬롬을 물으러 가야 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불길한 출발이었음을 복선으로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헤브론을 떠난 요셉은 도착한 세겜에서 형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야곱이 양치기의 범위로 허락한 지역은 세겜까지 였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이 모르는 새 허락 없이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우연히 어떤 사람에게 그의 형들이 세겜보다 더 북쪽 지역인 도단까지 양을 치러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순종에서 벗어난 형들에게 샬롬을 물으러 가는 요셉의 책임감은 곧 비극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셉이 입고 있는 특별한 채색옷 때문에 멀리서부터 요셉이 오는 것을 단박에 알아본 요셉의 형들이 그를 살해할 음모를 꾸몄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은 지금 요셉을 혼내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겁을 좀 주거나 으름장을 놓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정말로 요셉을 살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십대 때에 세겜성의 남자들을 모두 학살한 전력이 있는 살인자들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계획에 망설임이나 가책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꿈의 주인이 오고 있다’며, ‘꿈의 주인공을 죽이면 그 꿈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보자’고 말합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여 요셉이 꾼 꿈을 요셉과 함께 파괴하려 합니다.
이것은 야곱의 대리자로서 온 요셉을 죽이는 일이니, 아버지에 대한 반역이자,
꿈을 통해 하실 일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자 반격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짐에 대한 훼방이자 훼손의 시도였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고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말하자’며 알리바이까지 미리 세워둡니다.
오직 르우벤만이 동생을 ‘직접 죽여 손에 피를 묻히지 말자’고 제안할 뿐이었습니다.
요셉이 도착하자 형들은 요셉에게 달려들어 요셉의 채색옷부터 벗겼습니다.
마치 동물의 가죽을 벗기듯 거칠게 겉옷을 찢어내고 시신을 던지듯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우기에 빗물을 모아두어 건기에 우물로 사용하는 이 구덩이는 마침 물을 모두 사용하여 비어있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이 물과 식량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일 남짓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살인의 적절한 때를 위해 살해를 유보한 게 아니라 이미 살인을 실행한 것입니다.
요셉은 죽음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구덩이 아래서 요셉이 울부짖는 소리는 그의 죽어가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의 애걸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먹습니다.
십중팔구 그들이 먹는 음식은 요셉이 형들을 위해 싸 들고 온 음식이었을 텐데,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애원하는 소리를 노랫소리 삼아 요셉이 싸 들고 온 음식을 아무 가책 없이 맛있게 먹습니다.
무정하다 못해 매정하고, 무심하다 못해 잔인한 형들의 행동은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먹혔다고 말하자’던 그들의 말 그대로 우악스럽고 게걸스러운,
사람이라기 보단 악한 짐승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잡아먹혔다는 표현은 적절한 묘사였던 것입니다.
때마침 우연히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유다는 요셉을 그들에게 팔아버리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로써 꿈의 주인공인 요셉을 그들의 인생에서 영원히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신을 처리할 수고도 덜 수 있고,
무엇보다 20세겔이라는 몸값도 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은 모두 유다의 제안에 청종하여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몸값인 20세겔도 악한 짐승처럼 게걸스레 나눠 먹었습니다.
이토록 부조리하며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왜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요셉의 애원과 애걸하는 울부짖음을 외면하셨다면 악한 짐승 같은 형제들과 하나님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형들과 달리 하나님은 침묵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버림당해 팔려 가기까지 우연 같아 보이던 수많은 사건들은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순서대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버림당하고 팔려 가도록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모든 일들을 수행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요셉과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만약 요셉이 버림당하지 않는다면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대기근의 순간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 자리에 위치해 있어야 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목적으로 요셉의 버려짐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시며 그를 돌보셨습니다.
침묵은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시며 돌보시고 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