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요셉은 감옥을 벗어나 햇빛을 보았습니다.
요셉이 감옥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애굽왕 바로가 긴급히 요셉을 왕궁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죄수복을 벗고 수염을 자르고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부른 이유는 바로가 꾸었던 꿈 때문입니다.
며칠 전 바로는 아주 기괴하고 흉측한 꿈을 연속으로 두 번 꾸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나일강에서 올라온 살진 암소 일곱을 뒤이어 올라온 파리한 암소 일곱 마리가, 마치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잡아먹듯,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놀라 일어난 바로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을 청하고 다시 꾸게 된 두 번째 꿈은
충실한 이삭 일곱을 빼빼 마른 이삭 일곱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이 사냥감을 잡아먹듯, 입을 벌려 삼켜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바로는 지난밤 꾼 꿈이 이집트라는 국가의 존립이 걸릴 만큼 중대한 사안을 담고 있는 꿈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렇기에 바로는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이 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다른 일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에게 있어서는 꿈의 해석이야말로 그 어떤 사안들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였던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앞에 불려오기 바로 전까지, 바로는 애굽의 모든 술사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꾸었던 두 개의 꿈 해석을 명했으나 아무도 바로에게 해석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바로의 곁에서 늘 대기하며 음료를 제공하던 술관원장이 2년 전 자신이 겪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2년간 깨끗이 잊고 지내던 일이었는데 이제서야 갑자기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술관원장이 떠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요셉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하나님은 술관원장의 기억을 뚜껑 덮듯 덮어오고 계셨던 것입니다.
술 관원장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다급히 요셉을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3년전 요셉의 꿈이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애굽으로 들어오게 했었던 것처럼,
이제 바로의 꿈이 요셉의 죄수옷을 벗기고 왕궁으로 들어서게 한 것입니다. 

바로는 사람에게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답을 주실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말은 진심이 담긴 요셉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마 요셉은 꿈 해석을 조건으로 자신의 처신에 대해 확답을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일절 조건을 달거나 협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해몽이 하나님께 달렸듯, 이후 선처도 하나님께 달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란 말은
그저 해본 말이거나 요셉의 겸손이 아닌 요셉의 진정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 이야기를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즉시 꿈의 내용을 해석해줍니다.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은 7년의 풍년이 올 것이고 이후에는 7년의 흉년이 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흉년이 얼마나 혹독한지 앞선 7년간의 풍년의 풍요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할만한 흉년이 될 텐데,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경고로서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는 것이 요셉의 설명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꿈 해석뿐 아니라 닥쳐올 위기를 해결할 대안까지 제시합니다.
요셉이 제시한 해결책은 7년의 풍년 동안 1/5씩을 저축하여 7년의 흉년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제안이 해결책으로서 가능한 이유는 다행히도 흉년에 앞서 풍년을 먼저 겪을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흉년을 버텨낼 유일한 방법은 풍년을 먼저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흉년 전에 풍년부터 만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려운 시절이 다가올 것을 대비해 준비하는 인생은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도 장차 기근이 덮쳐 올 것이라고 합니다.(암8:11)
그런데 이 기근은 양식이 없어서 주리거나 물이 없어 생기는 갈함이 아닙니다.
진정한 흉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입니다.
이 흉년을 버텨내기 위해선 풍년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만나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릴 위해 자신의 몸을 찢어 그 살과 피를 우릴 위해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없는 시기를 가리켜 밤이라고 말합니다.(요9:4)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이 시기는 분명 그리스도인들에게 밤이요 흉년의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풍성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이 흉년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풍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관리하며 기억을 한 사람만이 흉년의 때에 버텨낼 힘을 얻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은혜는 언젠가 겪게 될 흉년 때에 양식이 됩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흉년을 버텨낼 은혜의 양식이 되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