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22년 만에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곡식을 구하기 위해 야곱의 아들 10명이 애굽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는 7년의 풍년이 지나가고 흉년이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야곱 일가에 식량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외국으로 반출되는 모든 식량의 통제를 총괄하는 요셉 앞에 알현하러 나온 형들을 보고, 요셉은 한눈에 형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과거는 다 잊었다고 생각하여 첫째 아들의 이름도 ‘잊었다’는 뜻의 므낫세라고 지었지만,
형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요셉은 그들의 눈매부터 목소리까지 모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형들은 짙은 화장과 달라진 모습의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예로 팔아버렸던 동생이 총리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형들은 요셉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흉년이 시작되면, 언젠가 이런 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요셉은 생각했었습니다.
요셉은 수많은 밤을 고민하며 보냈을 것입니다.
‘형들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처음엔 복수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총리가 된 이후 요셉은 정말 형들의 잘못을 잊었습니다.

잊었다는 말은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부분 기억 상실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사건이 앞으로 더 이상 관계와 행동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우리의 죄악을 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 된 상황에 대해 기억상실에 걸려 무지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요셉도 형들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요셉이 나서서 형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밝히고 복수에 대한 생각은 이미 잊었다며 남은 가족의 안부를 묻는다면
형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마 형들은 깜짝 놀라며 요셉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하며,
‘그때는 우리가 철모르던 시절이었다’며 ‘평생을 후회와 죄책감으로 살았노라’고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용서를 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요셉은 형들의 그러한 사과를 받아줄 수 있었을까요?
아직 요셉이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명확해져 버린 갑을관계 앞에서 구걸하듯 구하는 용서를 요셉은 과연 믿을 수가 있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결국 정체를 숨기기로 결정했습니다.
형들의 진심을 알아보기 전에는 혹 형들이 용서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회심 위에서는 결코 진정한 화해가 이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의 진심을 시험하고 증명하려 합니다.

화해란, 사이 좋게 풀어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화해의 결론은 화목함, 즉 사이좋은 관계의 회복이어야 합니다.
관계를 기준으로 화해를 평가하자면 진정한 화해란 용서에 머무르는 것 이상입니다.
화목을 누리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를 구하는 이의 진심이 진실할 때,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심할 때,
용서는 그제야 화해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후회와 참회는 다릅니다.
후회는 그때의 잘못된 결정으로 나의 오늘이 괴로워진 것에 대한 통회함을 말합니다.
만약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결정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잘못된 결정으로 발생하게 된 나의 극심한 괴로움을 면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런 수준의 통회함을 후회라고 한다면,
참회는 나의 괴로움을 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지난 잘못으로 말미암아 지금 괴로워하는 이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에
그의 괴로움이 나의 마음에 부딪혀 아픈 마음으로 통회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을 참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참회가 아닌 단순히 후회의 단계일 뿐이라면,
진정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적인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해라는 것이, 용서를 해주는 사람에게만 달린 일이 아니라, 용서를 받는 사람도 진정한 뉘우침의 통회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진정한 화해는 쌍방에서 나아가야 하는, 그래서 사랑이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시도하려 하지 않을 일인 것입니다.
‘앞으로 언제 또 보겠다고’ 하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의절하고 관계를 회피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상대를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노력으로 해나가는 진정한 화해는 사랑하는 사이에서야 가능해지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형제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경험하게 하십니다. 
화해에 합당한 자로 준비시켜 진정한 화목을 이루고 야곱의 온 가족을 애굽에서 살아가도록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믿으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한 화해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시고 깨닫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참회의 통회함으로 갈아엎으시고 준비시키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