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쇠약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이 있는 고센땅으로 내려갑니다.
나이가 많아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은 자신을 만나러 온 요셉을 보고
그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요셉 대신 자신의 아들로서 양자 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로써 요셉은 형제들이 각각 유산으로 얻게 될 몫의 두 배를 두 아들의 이름으로 나누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이 말은 지금 요셉을 이 가문의 장자로 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닿은 김에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줍니다.
그런데 이때 야곱은 손을 어긋나게 올려 차자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올리고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왼손을 올려 장자의 순서를 뒤바꾸어 축복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손을 원래대로 옮기려 했지만, 야곱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아닌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불려지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야곱은 비록 나이가 많아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영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총명했습니다.
야곱은 장자가 아닌 자를 장자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아이러니한 은혜를 선지자적 행위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 조상들의 행적이 담긴 족보에서도 장자가 아닌 자들이 어쩌다 보니 장자의 자격을 얻게 된 것 같아 보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우연이나 어부지리 등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른 것이 아닌,
야곱이 고의로 축복의 손을 어긋나게 올리듯,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도적으로 장자 삼으신 사건들이었습니다.
가인 대신 아벨을, 하란 대신 아브라함을, 이스마엘 대신 이삭을, 세라 대신 베레스를,
그리고 무엇보다 에서 대신 야곱을 선택하셨던 것은 장자가 아닌 자들을 장자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아이러니한 은혜의 선포였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고 자라 가나안땅을 본 적도 없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야곱은 세겜 땅을 물려주며 그의 인생에서 함께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함께 전수해줍니다.
사실 율법에서 밝히고 있듯 장자 승계의 원칙을 제정하시고 강조한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가 아닌 자들을 장자로 선택하심을 통해 하나님은 구속사의 혈통이 흘러가는 모습을 주목하도록 의도하셨습니다.
이는 실패한 장자 아담을 대신할 새로운 장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예표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예표하는 앞선 인물들과, 야곱이 선택한 요셉의 아들들 사이에는 결정적이게도 커다란 차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에브라임이나 므낫세의 혈통을 따라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아닌, 유다의 혈통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다는 점입니다.
장자가 아닌 자들이 장자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구속사를 예표 하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야곱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실패의 선택이요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자의적 선택이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신약 성경 히브리서는 믿음의 장이라 불리는 11장에서
야곱의 인생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난 믿음의 순간으로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한 이 장면을 선정했습니다.
벧엘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던 사닥다리 위 하나님을 만난 사건도 아닌,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밤새워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게 된 사건도 아닌,
구속사의 혈통과 무관한 애굽에서 낳고 자란 두 손자들을 축복하는 바로 이 장면 말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창세기의 마지막에 이르른 구속사의 전달이 실패가 아닌 완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새로운 장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아니라,
장자 되신 그리스도께 성령으로 연합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의 아이러니한 은혜는 그의 백성들을 노예나 종이 아닌 자신의 아들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들을 삼기 위해 아들이 오셨습니다.
장자로 삼기 위해 장자로 오셨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장자의 자격 없는 자들이 종국에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장자로 부르심을 받게 될 것임을 가르쳐주는 교회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이 장면이야말로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믿음의 순간인 것입니다.
이 축복은 보이지 않는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교회를 향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아들들에게 남겨준 유산은 본 적도 없는 세겜땅을 기다리는 기다림과 야곱의 일평생을 함께 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따르던 하나님,
야곱의 출생부터 임종까지 목자로서 함께 해주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그들에게 상속되는 것이야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위대한 유산이 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상속받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내 주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것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장자로 삼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