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에 노래로써 등장하는 야곱의 축복은 위치상 그리고 문예적 형식상 창세기 내용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야곱의 축복을 잘 살펴보면 창세기가 처음부터 계속 전달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대체 무엇이었지 노골적으로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야곱의 예언은 단순히 아들들의 개인사와 일생에 대한 예언, 혹은 지파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훗날’ 즉 ‘마지막 날’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과 대속의 구원 계획을 시로써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이 예언은 어느 아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따라 그의 구원 여부까지 고민해야 하는 성질의 예언이 아닙니다.
아들들을 향한 사적인 축복을 넘어서는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지파에 대한 억하심정이나 칭송으로 이 시를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 예언은 야곱의 아들들 이름을 이용하여 구속사의 내용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인지,
야곱의 열두 아들이 등장하는 순서가 원래 그들이 태어난 순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야곱이 자기 아들들 서열을 착각하여 순서를 실수한 것일 리는 없습니다.
축복문을 한 편의 시로서 작성할 정도라면 순서의 변화는 의도적인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 의미 없이 순서를 바꾸어놓았을 리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새로운 등장 순서는 예언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해 아들들의 새로운 등장 순서로서 강조되는 이는 야곱의 다섯째 아들인 ‘단’입니다.
원래 서열대로 한다면 다섯 번째로 등장했어야 하는 단은
야곱의 축복에서만큼은 열째아들 스불론과 아홉째 아들 잇사갈의 등장 이후에 일곱 번째로 그 이름이 등장하게 됩니다.
‘단’에 대한 예언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어휘들이 ‘단’에 대한 예언에서 의미심장하게 대거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사롭지 않은 ‘단’에 대한 예언 직후에 야곱은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하고 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단의 이름은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예언에서 단은 그 이름 뜻대로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자기 백성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후에 나오는 승리의 모습은 빛을 바래게됩니다.
뱀이 말굽을 물어 그 탄 자를 떨어뜨린다고 했는데 그렇게 떨어진 자가 자기 백성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야곱은 단을 뱀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이전에 등장한 뱀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존재였습니다.
또한 단을 향해 독사라고 했던 것과 창세기 3장에서 뒤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할 때 상함이 같은 어원의 단어인 점,
그리고 창세기 3장의 뱀이 뒤꿈치를 상하게 하듯 ‘단’이 말의 발굽 곧 뒤꿈치를 문다는 점 등등
여러모로 보아 단에 대한 예언은 창세기 3장에서 뱀에 대한 예언과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을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창세기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범죄,
즉 뱀의 유혹으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직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원수입니다.
뱀은 여자의 후속과 원수이기에 호시탐탐 그를 넘어뜨릴 생각으로 뒤꿈치를 물 틈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부수는 게 아니라 뱀의 머리를 부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출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리고 뱀은 사단을 예표합니다.
그렇다면 뱀의 후손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뱀의 후손은 바로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흠결을 잡기 위해 그를 따라다니던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은 ‘너희의 아비는 사단’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사단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망을 이겨낼 승리에 대한 예언이며
그렇게 뱀의 머리를 부수고 뱀의 후손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자기 양자로 삼으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예언에서 단을 뱀이라고 불렀기 때문인지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열두지파에 단 지파의 이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예언은 어느 지파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냐를 알려주려는 예언이 아니기에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야곱의 축복이 전달하려는 것은 사단의 공격에 반격을 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렇게 역전으로 승리하는 십자가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창세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복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진정한 복으로 말미암아 역전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영원한 승리가 우리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