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가 끝나고 누가복음 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온 교회가 누가복음을 통해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채워주시길 기도합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에 의해 예수를 영접한 이방인이자,
이후 바울의 순회 선교 사역에 끝까지 함께 한 동역자이며,
의사로서 바울의 주치의를 자처한 인물입니다.
누가는 바울로부터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도도 아니었고, 심지어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목격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편지 형식의 책 두 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모든 사도에게 계시로서 인정받아, 온 교회에 회람되는 성경으로서 공인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복음에 대해 기록한 모든 글이 성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사도가 쓴 글이라 하여 다 성경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들은 이 이방인의 글은 성경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1차 목격자이자 증인인 사도들은
계시가 기록되는 시기에 성령의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인지하고 보증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기부터 온 교회가 성경으로 인정했던 누가의 글은 여러 자료와 목격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온전한 사실로 인정된
깊이 있는 연구와 통찰력의 글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누가의 저작 활동 동안 그의 이성과 지성이 탁월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도우시고,
동시에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으로 섭리하셔서 진리가 온전하게 기록될 수 있게 지키셨습니다.
누가 스스로가 복음을 전해 들어 신앙을 얻게 된 사람이었기에,
누가는 자신처럼 복음을 전해 들어 신앙을 이루어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물려받은 ‘복음에 대한 지식’에 온 마음을 쏟아 복음서로 기록하여 전달함으로써 성경의 저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이 복음서를 써 보냅니다.
누가가 그를 향해 각하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데오빌로는 로마의 초고위 관료 중 한 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데오빌로는 로마에서 바울의 재판 과정에
증거물로 제시된 바울의 서신서들을 읽고 복음을 접해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가 어떤 경로로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정황상의 추측 말고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데오빌로는 이제 막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초신자였다는 점입니다.
누가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을 받을 때쯤엔 누가가 데오빌로를 친근하게 부르는 점을 보면 그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은 예수를 막 믿기 시작한 초신자를 대상으로 한 복음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복음은 자세하고 친절하며 따듯합니다.

예수를 막 믿기 시작한 데오빌로에게 누가는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데오빌로에게 예수를 믿기로 한 각오와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복음서를 집필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기 시작한 사람에게, 믿음의 성장이 필요한 초보 신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귐의 교제나 뜨거운 열정의 성령 체험 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바른 지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누가는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에게는 예수를 바로 아는 지식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자 필요한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믿음이란, 참되고 옳은 진리를 반석 삼아 그 위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의 대상에 대해 모르는 채로는 사실 아무것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것일 뿐, 믿음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 없는 믿음은 사실 믿음이 아닙니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아는 만큼 믿을 수 있습니다.
믿는 만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만큼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땐,
믿음의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계시를 깨달아 알아가게 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만난 귀신들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지식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발원하는 바른 믿음이란 아는바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는바 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사는 수준에 맞추어 변개한 지식을 원하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아 갈 수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별개의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도록 일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