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지난 4월, 총선을 마치고 썼던 글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8월 19일 입니다.

아래 글은 당시 3월 개척이 미뤄져 홈페이지를 제작하던 중 써두었던 글입니다.
당시, 이 글이 여러모로 편향되어 보이고 편중되어 보인다는 주변의 의견이 있어 내려두었던 글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 이 글은 편향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제목과는 달리 오히려 세상 정치와는 거리가 먼 글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주변에서 평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교회가 공적으로 정치적 어떤 노선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뿐이었습니다. 
교회가 사회와 정부에 목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정교분리의 당연한 원리의 호소가 편파이고 편중으로 보인다는 것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이 글을 내렸습니다. 

이글을 쓰고 4달이 지났습니다. 개척을 한지도 2달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제 우려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간에도 현실이었지만… 곪아터지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식의 덮어놓기가 결국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열매를 떠 안아버렸습니다. 
이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겁니다. 
코로나가 우리를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듯,
광복절날 광화문에 모였던 기독교인들의 집회는 이제 기독교의 얼굴을 다시 사회를 향해 들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간 교회가 사회로부터 착실히 쌓아놓은 데미지가 있었기에 이제는 정말 KO 선언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일부 기독교인들의 일탈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소수 기독교인들의 잘못일 뿐이라고,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기독교인들이 더 많다고 말하는 변명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유통기한이 지났습니다. 
한국교회는 대사회적으로 붕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외면한다고해서 외면되거나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눈은 가려도 코는 가릴수 없습니다. 
오늘 음식점에서 카페에서 모여있는 사람들마다 교회 욕을 하더라는 걱정의 말을 여러 차례 전해들었습니다. 
참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태극기 집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촛불 집회?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으로 직접 나서서 그리스도인들만을 동원해놓고 ‘반정부 집회’라니요, 방역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하다니요, 
믿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픈 마음에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퇴근을 못하고, 교회에 앉아 글을 썼다가 지웠다 썼다가 지웠다 합니다. 
하나님, 다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
미움받는 왕에게 받은 한 므나로 세상을 섬기게 해 주십시오.

이글을 게시할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합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 제 마음만 쏟아놓고 끝낼까, 아니면 성도들과 나누고 반면교사로 삼도록 해야할까
고민중입니다. 
4달 전, 아래 글을 올려놓고 이런 일을 맞았다면…. 제 양심이라도 떳떳했을까요? 거보라고,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고… 
아마 그렇지 못했겠지요.
한국교회가 이 모양이 되도록 방치한 책임을 하나님이 물으시는거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제가 뭐라고 교회를 대신하여 사과 할수 있을까요? 할수만 있다면 사과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4월달 글을 이제야 공개로 전환하다니… 지나가버린 글을 누가 읽는다고?’
저를 비겁하다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요.
이래나 저래나 그들도 우리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안고 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래글을 내렸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4월달… 지나가버린 채로 글만 공개로 전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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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의 결과에 만족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아마 많은 분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정당과 후보를 찍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셨을 겁니다.
총선을 몇일 앞두고 크리스찬의 정치라는 주제의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지만,
자칫 오해가 있을지 몰라 총선이 끝나고 쓰는 것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제야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기독교와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고, 또 혼란을 느끼기도 하실 겁니다.
실제로 그 동안 기독교인의 정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직,간접적인 질문들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특히 젊은 교구의 성도들이나 청년들은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목회현장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교계의 원로 혹은 대형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들이 인터넷과 광장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수주의에 가까운데,
이는 젊은 세대가 생각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통념과는 상반된 내용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평소 존경해오던 목사님이, 심지어 강단에서 쉽게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분들까지도
분연히(?) 일어나 하나같이 ‘이번 총선은 체제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소위 보수라고 주장하는 정치 세력과 궤를 같이해야 하는것인가보구나’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집니다.

교계의 어르신들 눈에는 세상이 점차 적그리스도의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신앙의 자유가 위험해지도록 방치하는 듯한 젊은 세대들이 한심해보이고 걱정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새로이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층의 사람들이
현대 사회의 가치와 관점에서 그런 목사님들의 주장을 바라볼때 극우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보수와 진보.. 누가 맞는 것일까요? 어느 입장이 진리에 가까운 것일까요?
기독교는 두 입장중에 어디에 속해있을까요?
기독교적 가치관은 진보와 보수, 둘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이런 정치적 고민을 대면할때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하는 질문에 답을 요구받는 것 처럼 조심스러워 집니다.
이럴때 대답은 지혜로워야겠지요.

하지만 강의를 하다보면 제가 너무 진보적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반대로 너무 보수적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양쪽 진영의 성도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보수에도 속하지 못하고, 진보에도 속하지 못하는 처지인 듯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사이 중도의 위치에 있는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그에 대해 해명을 해보려 합니다.

어떤 분들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설명하며
보수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진보는 인간성을 내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하기도 하던데…
사실 진보적 가치관도, 성경적인 가치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논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진보에서 강조하는 ‘인권’의 경우, 유물론적 가치관으로는 성립되질 않지요.
유물론적 사고에서는, 모든 동물들 중 인간만이 특별한 권리를 가질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인권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결국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진보적인 관점도 성경적 가치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과 도덕과 윤리를 잃게 됩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진정한 진보는 성경적 가치관을 필요로 합니다.
진정한 진보도, 진정한 보수만큼이나 성경적 가치관에서 시작해야만 합니다.
성경적 가치관과 진보적 가치관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포함관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진보가 더 성경적이라거나 진보적 가치관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 가치관에는 진보적 가치관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임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에는 보수적인 가치관도 포함되어 있지만, 진보적 가치관에 해당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보수는 성경적 가치관에서 시작해야 하듯, 진정한 진보도 성경적 가치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적 가치관이 보수와 진보 그 사이 어디 쯤 중간에 위치해 있는것은 아닙니다.
성경적 가치관은 정치적 중도나 극중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이 마음대로 선을 그어버린 보수와 진보의 줄다리기 선 위에서는 기독교의 가치관을 좌표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가치관 곧 성경적 가치관은, 그 방향과 관점에 있어서 세상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꼭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보수와 진보와 기독교의 관계는 삼각형에 더 가까울지 모릅니다.

따라서 성경적 관점은 어떤 주제에서는 진보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주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어떤 주제에 있어서는 보수에도 그리고 진보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성경적 가치관은,
보수의 관점에서 양심적으로 보면 너무 진보적으로 보이게 되고, 
진보의 관점에서 양심적으로 보면 너무 보수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라볼때, 세상 사람들과는 관찰계를 달리해야 합니다.
보수적 입장에 서서 성경을 바라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보적 입장에 서서 성경을 바라보려고 하면 안됩니다.
보수적 입장에 서서 성경은 보수적이라고 말하는건 어불성설입니다.
진보적 입장에 서서 성경은 진보적이라고 말하는건 넌센스입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두고서 누군가가 성경적 가치관은 진보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정의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가 성경적 가치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치적 보수를 신학적 보수와 혼동하거나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분이 있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치적 보수는 신학적 보수와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보수와 진보 둘 중에는, 성경적 가치관을 온전히 반영하며 설명해 줄 수 있는 관점이 없습니다.
각 주제에 따라 때로는 보수가, 또 어떤 주제에 있어서는 진보가 더 성경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각 후보의 공약을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행보를 찾아봐야 합니다.
당연하겠지만, 말과 행동이 같은 인생을 살아왔느냐가 중요하겠지요.
당연히, 어떤 후보라 하더라도 공약의 전부가 다 성경적인 가치관에 부합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동성애만 막아준다면 도적이라도 뽑아주려는 것은 너무 미련한 생각입니다.

지금 많은 목사님들이 보수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는 갑니다.
동성애와 관련한 걱정으로 보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수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기 때문은 아니리라 믿고싶습니다.
정치권에게 반공에 이어 기독교가 사용당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그만큼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발원한 행동이라는 부분만큼은 이해를 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있어서 더 지혜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스도인은 대체 누굴 뽑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음… 그건… 대사회적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신념대로 살기위해 본인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또한 능력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이를 위해 때로는 보수 정당에 속한 사람에게 표를 줄 수도 있고,
때로는 진보 정당에 속한 사람에게 표를 줄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도 저도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기독교적 가치관의 일관성을 보여주며 발언권을 가질 정당을 직접 만들도록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셨는지도 모릅니다.

ㅎㅎ 혹시 김이 빠지는 대답이었나요?
제 말의 결론은… 그때 그때 다르다 입니다. 주제마다 다르다 입니다.
교회의 대정치적 입장이라는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공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삼가해야 합니다.
교회는 진보와 함께 가지 않지만, 보수와도 함께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는, 때로는 보수와 함께, 때로는 진보와 함께 가야만 합니다. 
성경의 가치관을 따라 살며 필요에 따라 보수와 진보의 주제들을 아우르며 사용하는,
정치에 있어서는… 한 사람의 신념있는 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일부 극우 성향에 ‘복음의 진리’를 운운하며 정치에 교회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을 보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치에 무관심하게 인생을 보내어선 안됩니다. 
정치와 무관한 시민은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대면할 때 우리는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가 아니라,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마주서야 합니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적 가치관은 세상이 정해놓은 정치규범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며,
시민으로서는 정치에 참여하되, 교회와 성경을 사용하려고 하지는 말자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각의 정치적 견해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교회에서, 진리의 후광을 입어 공적으로 요구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주의 이름을 만홀히 사용하는 범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