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로부터 메시아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마리아는 가까운 친척 엘리사벳의 집에서 3개월을 머물렀습니다.
마리아 배 속의 예수는 아직 세포 몇 개 밖에 안되는 크기였지만 엘리사벳은 첫눈에 마리아가 임신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잉태된 아이는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심도 알아보았습니다.
엘리사벳은 당시로선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리아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엘리사벳만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아차렸고, 엘리사벳만이 마리아를 믿어줄 수 있었기에,
오직 그녀만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을 ‘보라’고 명령형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의 집은 최초의 크리스찬인 마리아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복음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거하는 삼 개월 동안 분명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고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적인 이야기라든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시는 성육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과의 이러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고지 계시를 받을 때부터 이미 믿음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아직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천사가 떠난 직후 곧바로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터뜨리게 된 것은 그녀가 엘리사벳을 만난 이후였습니다.
엘리사벳과의 만남을 통해 마리아는 이 믿음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믿음은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되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기쁨이 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엘리사벳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하나님의 큰일을 서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때에, 정리되지 않던 마음이 정리가 되고,
이해되지 않던 하나님의 일하심이 깨달아지며 하나님의 퍼즐 조각이 맞춰집니다.
그때 믿음은 기쁨이 됩니다.
마리아는 터져 나오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마리아의 이 노래는 “나의 영혼이 주를 찬양하나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라틴어로는 “마그니피카트 아니마 메아 도미눔”이라고 읽는데,
찬양한다는 뜻의 첫 단어 ‘마그니피카트’를 따서 마리아의 찬가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곤 합니다.
마그니피카트를 포함하여 모든 찬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포하고 선언하는 노래입니다.
마리아가 노래하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비천한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그니피카트 뿐 아니라 성경에서 묘사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의 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를 내려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권력 있는 자와 부자를 특별히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주께서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동행과 은혜가 떠나갈까 봐 두려워함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사라질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하나님이 간섭하실까 봐 귀찮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의도적으로 연약한 자, 소외받는 자,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처음 들은 사람도,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으로 오시기 위해 잉태되셨음을 이해하고 목격한 첫 증인도 여자였습니다.
최초의 크리스찬, 최초의 복음 공동체는 여성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눈물로 장례를 준비하며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머리카락으로 닦던 사람도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도 제자들이 아닌 여자였습니다.
이것은 놀랍도록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효과적이고 신뢰할만한 사람을 증인으로 세워도 모자란 상황에, 남자가 아닌 여자를,
제자들이나 제사장과 같은 권위자가 아닌 엘리사벳과 마리아와 같은 무명의 여자들을 증인으로 세운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연약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소외되고 외면받고 연약하고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그들로써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이 연약하고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신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그 모든 비천은 끝나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연약함은 종결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면 비천함은 끝장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낮은 자리에서 연약한 자들 곁에서 비천한 자들의 곁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비천한 자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우리 주님은 비천한 자들을 통해 주의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