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엘리사벳의 집에서 지내던 마리아가 결혼 준비를 위해 나사렛으로 떠나고 난 후,
만삭이던 엘리사벳은 곧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1년 전 천사의 말대로 아들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다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 ‘하나님께 버림받은 여자’처럼 일생을 살아온 엘리사벳에게는 그야말로 기적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이 되어 율법대로 할례를 받는 날 또 하나의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1년 가까이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사가랴가 갑자기 입을 터뜨리며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가랴가 다시 말을 하게 된 것은 아기의 이름을 짓는 순간이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스러운 조상들 이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작명하던 이스라엘의 문화에서
귀하게 얻은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본떠 짓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아기의 이름을 사가랴가 아닌 요한이라 짓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이런 결정이 사실인지 사가랴에게 손짓, 발짓으로 의견을 물어봅니다.
바로 그때 사가랴가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서판에 적는 순간 사가랴의 혀가 풀리고 입이 열렸습니다.
사가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보에 담긴 물이 터지듯,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찬송을 쏟아놓습니다.
사가랴의 찬송은 라틴어로는 ‘베네딕투스’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복 받을만 하다~ 찬송받을만 하다’는 뜻입니다.
10개월 동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사가랴의 마음속에 가득 채우고 있던 말들이 찬양이 되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 말로 나오는 법입니다.
10개월간 무섭도록 적막하고 고요한 침묵의 세계에서 사가랴가 쌓아온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알고 있던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말들이 의미하는 바가 결국 무엇이었는지,
1년 전 자신이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던 바로 그 일이,
이제 이 아들의 탄생으로서 시작되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감격은 사가랴로 하여금 목 놓아 찬송을 부르짖게 만들었습니다.

사가랴의 찬송은 기쁨과 감격이 가득 담긴 찬송이었으나, 자신이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뻐하는 찬송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특별한 아들 요한이 얼마나 큰 사람이 될 것인지,
가문의 영광을 빛낼 얼마나 훌륭한 선지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자긍심과 기쁨도 아니었습니다.
사가랴의 기쁨은 오직 거룩한 선지자들에 의해, 그리고 믿음의 선조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껏 소망으로 기다려온 그 일이 이제 시작되었음에 대한 감격이었습니다.
사가랴는 그의 찬송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으로 기다려오던 것, 성경이 약속하던 바로 그 일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여 찬양합니다.
그것은 바로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다윗의 집에 하신 약속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맹세도, 선지자들의 예언도, 거룩한 언약들도
모두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결국 핵심이었습니다.
바로 그 약속을 이제 하나님께서 실행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사가랴는 찬양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란 말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한 그 일은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찬양입니다.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 구원의 뿔을 세우셨습니다(눅1:69).
사가랴의 찬송대로, 장차 구원의 뿔을 세우실 것이 아니라 이미 세우셨습니다.

구원의 뿔이란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뿔’은 구약의 많은 문맥에서 힘과 능력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사가랴의 찬양에서 구원의 뿔이란 문맥상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눅1:77).
마치 제사 제물의 피로써 거룩하게 구별된 ‘지극히 거룩한 번제단의 뿔’이 그것에 닿는 모든 것들을 정결하게 만드는 것처럼(출29:37),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뿔이신 것이죠.
사가랴는 아기 예수가 사람의 아들로 잉태된 것을 감격해하며 이렇게 찬송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뿔이신 예수께서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실 것이라는 이 노래는 놀랍게도 인류의 진정한 원수가 누구인지도 선명하게 소개해줍니다.
그것은 문맥상 사가랴의 찬송 후반부에서 언급하고 있는 죄와 사망입니다(눅1:79).
죄와 사망에서 우릴 건져내실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는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자들에게 햇빛처럼 임하여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다다르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어 사망권세를 죽이시고 일어나
우리에게 긍휼로 은혜를 베푸시며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야말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린 ‘구원의 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가랴의 노래는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실 십자가를 향한 노래이자,
인생을 돌이켜 십자가를 주목하여 바라볼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래인 것입니다.
사가랴의 찬송대로 하나님은 ‘구원의 뿔’을 예수 믿는 우리의 삶에 세우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실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