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초대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호적 조사 명령이 내려지자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의 본적인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도착한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의 호적 명령으로 인해 갑자기 고향 땅에 몰려든 사람들 탓에 어느 곳에서도 빈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방을 구하지 못한 요셉과 마리아가 느꼈을 감정은 단순한 곤란함이나 당혹스러움을 넘어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삭의 임산부였던 마리아에게 이미 해산의 진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빛도 없고 씻을 물도 없는 베들레헴의 밤거리에서 출산할 수는 없습니다.
진통의 간격이 점차 줄어들자 요셉은 급한 마음에 마구간에라도 들어가 아기 낳을 준비를 합니다.
마구간에서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마음 따듯해지는 훈훈한 광경이 결코 아닙니다.
망아지와 송아지들이 웃고 있고 어디에선가 예쁜 노란색 간접 조명이 비춰오며
천사들의 연주 소리에 아기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은 현실에선 없었습니다.
바닥은 오물과 흙이 뒤엉겨 진창이고, 그 어디에도 아기를 내려놓을 만한 곳이 없어 말구유에 마른 짚을 깔고 그 위에 천을 덮어 아기를 누였습니다.
마구간에서의 출산은 산모와 아기에게 최악의 상황이었을 뿐 아니라 위생적으로 위험하기까지 한 순간이었습니다.
돈 없고 평범해서 방을 얻지 못해 거절당하여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던 현실은 비참하고 참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배 속에는 온 우주도 다 담지 못한 창조주 하나님이 잉태되어 있는데,
베들레헴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방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이렇게 오시리라고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왕의 왕, 주의 주,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아무도 몰라볼 만큼 평범하게 오셨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가난하고 비천하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평범함에 걸맞은 대우를 당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절입니다.
아기 예수는 마리아의 배 속에서 요셉과 함께 거절당했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는 그렇게 오셨습니다.
따듯한 온정이 아니라 차가운 거절의 현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에 시작이었습니다.
대체 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이런 잔인하고 비참한 대우를 받도록 내어버려 두셨습니까?!
왕의 왕, 주의 주가 태어나시는 순간에 그 어떤 특별 대우도 없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을 반기는 현수막이나 레드카펫이나 에스코트해 주는 도우미나 사람들의 환호나 천사들의 퍼레이드도 없었습니다.
최고급 일등 객실은커녕, 출산을 도와줄 이도 없었습니다.
아기침대가 아닌 동물의 먹이통에 아기를 눕혀야 했습니다.
대체 왜 아기 예수는 이렇게 아무 대접도 없이, 특별한 것 없이 오셨을까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왜 이런 거절을 당하도록 막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임산부가 사람들의 거절 속에서 마구간에 들어가 출산하도록,
이런 잔인하고 비참한 일이 발생되기까지 내버려두셨을까요?

그러나,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이유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거절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관을 쓰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버림받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으러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기꺼이 거절을 당하신 것은 애초에 목적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대신 거절과 거부를 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거절이야말로 성육신의 목적이고 본질이고 이유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거절당하셨습니다.
그는 끝내 사람들에게 거절 받고 버림받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의 거절당함은 우리의 수용을 의미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사53:5).
그가 세상에 버림당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버림으로써 우리를 그의 자녀들로 받아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이천 년 전 요셉과 마리아는 그런 예수님과 함께하기에 그와 함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안에만 예수님이 계신 것은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안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의 자녀 안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주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주와 함께 거절도 당할 것입니다.
주와 함께 거절당함이 우리에겐 이상하고 희한한 일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 믿고서 내 삶에 큰 변혁이 있을 것을 기대하지만
만왕의 왕과 함께 하는 인생에 특별한 대우는 사실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과 그에 걸맞은 거절의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평범함 속에 특별한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그냥 평범함이 아니요 비범한 평범함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것을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합니다.
동기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이유가 다릅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인생이겠으나 주와 함께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주께서 우리를 수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께서 아들로 받아주실 때 누리는 은혜를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