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예식이란 부정한 상태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제사를 말합니다.
율법에선 사람이 피를 흘리게 되면 부정해지는데 특히 여자들의 경우 월경 때(레15:19), 아기를 낳을 때 피를 흘리게 됩니다.
아기를 낳다가 부정해진 여자는 40일 동안 부정하며 정결예식을 통해 정결해집니다(레12:4).
마리아와 요셉도 아기 예수를 낳은 지 40일이 되어 정결예식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성전에 올라온 김에 요셉과 마리아는 ‘모든 첫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율법의 말씀(출13:12)에 순종하기 위하여
아기 예수를 하나님께 드릴 계획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자를 하나님께 드리는 대신 레위인을 생명의 속전으로 삼게 되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듯 속전이 아닌 아들을 직접 하나님께 드리려 했습니다.
이와같이 요셉과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율법에서 명하는 바대로 어김없이, 오히려 그 이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보여준 ‘율법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당시에도 결코 당연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일들, 곧 율법 준수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평생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이 있음을 소개합니다.
그중에 한사람은 성경이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일평생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왔던 인물인 시므온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무려 84년을 과부로 살며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여선지자 안나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 들어서면서 이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지시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의 지시대로 오랜 시간 이 땅에서 놓임을 받지 못한 채 약속의 메시야를 기다려왔습니다.
시므온은 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 올라온 마리아에게서 아기를 받아 품에 안는 순간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제야 이 땅에서 놓임을 받게될 것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즉 그는 품에 안고 있는 이 아기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시므온은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침 곁에서 이 사건을 목격한 안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아기에 대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 그리고 그 품에 안긴 아기 예수는,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세대와 이제 막 세상을 살아가야 할 세대의 만남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시므온과 안나로 대표되는 율법과 선지자의 옛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그리스도 예수가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는 세대의 대표로서 연로한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시대는 이제 곧 마무리될 테지만 아기 예수가 열게 될 새 시대는 이제로부터 영원할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약속의 시대에 머물러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때, 말씀이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었을 때,
약속은 실체가 되어 우리에게 열매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으니,
믿음으로써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모든 사람들은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스리면 국가요 하나님이 다스리면 하늘나라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를 받는 사람마다 천국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 미래의 막연함으로가 아니라 현재적이고 강력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성취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전과 이후는 시대는 완전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전하게 달라졌다 할지라도,
도래하는 새 시대와 그 시대를 기다려온 옛시대 사이에는 어떠한 부딪힘도 없었습니다.
옛 시대와 새 시대의 만남 속에 충돌은 없었습니다.
지나갈 세대와 다가올 세대 사이에 갈등은 없었습니다.
새 시대를 가져올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가 훗날 밝혔듯 그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마5:17).
그 증거로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에 순종합니다.
또한 율법에 일평생 순종하며 살았던 시므온과 안나가 보여주었듯,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온 진정한 유대교인이라면,
그 기다림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거나 거부하거나 대립하거나 충돌하거나 갈등하기는커녕
기다림의 목적이었던 분의 도래함을 인하여 오히려 기뻐합니다.
이 모습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교회와 복음을 거부하고 핍박했습니다.
누가는 그런 핍박의 행위가 정상이 아님을 본문을 통해 보여줍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들려지지 않는 이유는 기다림의 목적의 대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아닌 정치적 평화를 기다리거나, 군사적 리더를 기다리거나, 종교적 권리를 기다렸다면 예수를 만나는 일은 실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기대한다면 기쁨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를 소망한다면 부딪힘이란 없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사랑하려고 몸부림쳐서 하나됨이 아닌 진리 앞에 하나되는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