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림하심과 함께 세례를 받은 예수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유대 산지의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을 주야로 금식하신 예수님은 주리고 쇠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사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이 된 하나님을 찾아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영적인 공격을 시작합니다.
사단은 이미 아담에게 맡기셨던 하나님의 세계를 파괴한 전적이 있습니다.
또한 다윗의 왕조를 영원하게 하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저지하고 결국엔 여러 강대국의 지배를 거쳐 현재 로마의 통치를 받게 한 이력도 있습니다.
적어도 사단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승리자로 여기고 있었을 터였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꽤나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사람이 되어버린 하나님, 게다가 지금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인간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을 쓰러뜨리는 일은 그에겐 전문분야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은
파괴된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고 스코어를 역전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회복할 목적 때문일 것이리라 사단이 짐작해 볼 수 있겠으나,
대체 연약한 사람이 되어 무슨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는 왜 하나님의 아들이 하필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오셨는지,
왜 갑자기 금식을 하며 자신의 몸을 쇠약하게 몰아붙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순간을 놓친다면 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유혹으로 예수를 시험합니다.
사단의 시험은 연약해진 예수님의 인성을 공략한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돌을 떡으로 바꾸라는 제안이었습니다.
40일을 굶은 사람에게 먹을 것의 유혹은 참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세상의 영광과 권위를 내어줄 테니 손을 잡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오신 분에게
세상의 권세와 영광과 주권을 손 안 대고 코 풀듯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솔깃한 유혹이리라 사단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역시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능을 보여주는 능력의 확인과 과시였습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게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 아니냐는 사단의 부추김에
역시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사단의 유혹들은 인간이라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인간들이 메시야에게 가장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사단은 타락한 인류를 대신해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상을 예수에게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골똘한 인류가 바라는 건 배불리 먹고 살게 해줄 메시야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하고 나아가 온 세계를 점령할 강력한 군사적 메시야입니다.
사람들은 열 가지의 진리를 풀어 가르쳐주시는 것보단 놀라운 기적 하나에 더 열광합니다.
성전 꼭대기 쪽에서부터 천사가 받들어 하늘에서 임재하시는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사람들을 모두 강렬한 믿음을 가지고 메시야를 추앙할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단은 이 땅의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의 것으로 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예수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 옳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시험당하시기 전에 먼저 금식을 통하여 몸소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모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도 시내산에서 40일 주야를 금식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예표였습니다.
그렇게 40일을 금식하며 모세가 얻게 된 것이 바로 십계명,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모세뿐 아니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도 떠올리게 합니다.
40년간 광야를 헤매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로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말씀에 대한 상징이고 에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하신 것은 본능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고 살아가야 할 말씀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선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사단의 모든 시험을 말씀으로써 이기셨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야와 실제 메시야가 행하실 말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싶은 하나님과 성경의 하나님은 차이가 있습니다.
유혹이란 다른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겨냄이란, 믿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 속에서 선명해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배란, 믿고 싶은 하나님이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을 따르려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본능과 본성을 거슬러 십자가를 지고 주를 쫓기로 결정하는 우리의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파도처럼 몰려오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의 십자가는 시험당할 즈음에 돌파구를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