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그물과 씨름하느라 시몬은 기진맥진 지쳐버렸습니다.
고기잡이라면 갈릴리 호수에선 나름 잔뼈가 굵은 시몬이었지만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것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날은 아예 그물질을 빨리 접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몬은 ‘오기’라도 부리듯 밤새 고기잡이에 매달렸습니다.
마치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했던 것처럼 시몬은 고기잡이 그물을 잡고 밤새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밝자 시몬 일행은 결국 어업을 접고 호숫가로 복귀하게 됩니다.
해가 떠서 호수의 수온이 올라가게 되면 물고기들은 얕은 물가에서, 그물이 닿지 않아 잡을 수 없는, 깊은 물 속으로 이동해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텅 비어있는 두 대의 고깃배와 수선이 필요해진 빈 그물은 지난밤의 수고가 완전히 헛수고였음을 보여주는 실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배도 그물도 다 한쪽 구석에 던져 놓고 싶은 마음일 테지만
내일의 어업을 위해선 귀찮고 피곤할지라도 그물을 수리하고 정리해 놓아야만 했습니다.
시몬과 동업자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그물코를 한땀 한땀 확인하며 그물을 수선합니다.
한편 시몬 일행이 그물 정리를 하고 있는 호숫가 한쪽에선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라고 소문난 한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권위에 놀라워하며 그 가르침을 들으려 모였습니다.
혹시 또 기적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마저 더해져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호숫가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말씀을 가르치던 남자는 결국 시몬의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선 육지에서 잠깐 배를 띄워달라 요청합니다.
시몬은 피로함에 모든 걸 제쳐두고 일찍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테지만,
예수님의 부탁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며칠 전 예수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시몬은 사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사경을 헤맬 때 예수가 말씀으로 열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는 다른 곳도 아닌 시몬의 집에서 묵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시몬은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모습 또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왔습니다.
예수의 실체에 대해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모여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시몬에게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시몬은 오늘 아침,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 은혜의 자리가 아닌,
예수와 거리를 두고 떨어진 곳에서 그저 그물 수선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밤새 ‘오기’로 씨름하던 시몬의 고민과 갈등은 바로 예수 때문이었습니다.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을 목격한 대로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가 맞다면
그는 인생 전체를 그분께 걸어야 한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엔 시몬에게는 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지켜야 할 것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그분을 모실 여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몬에겐 메시야와의 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거리를 무시하고 좁혀들어 온 것입니다.
예수는 시몬을 곁에 앉혀두고 호숫가의 수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배 위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으니, 시몬도 꼼짝없이 앉아 말씀을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거리를 두려는 우리에게도 찾아와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말씀은 우리로 움직이게 합니다.
베테랑 어부였던 시몬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전직 목수의 비전문적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그가 지금껏 들었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시몬은 스스로 깊은 물 속의 물고기를 잡을 장비도 능력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반응하여 내린 그물에는 일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수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놀라고 기뻐하고 만족으로 환호성을 쳐야 할 것 같은 순간!,
그러나 시몬의 반응은 환호가 아닌 절망이었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떠나소서”
그물이 찢어지고 두 배가 가라앉을 만큼 가득 차게 되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베드로는 자신의 내면이 실로 텅 비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어있던 배가 채워졌지만, 가득했던 내 속은 가난하게도 텅 비어버리는 경험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베드로를 위로합니다.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물고기 잡는 어부였던 시몬이 사람을 잡는 어부 베드로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조금 전 수많은 물고기를 잡은 것이 베드로의 기술이거나 능력이 아니었듯,
주님은 베드로의 기술과 능력과 수완을 보고 그에게 복음 사역을 맡기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물 안으로 물고기들이 뛰어 들어왔듯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께서 불러 모으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일에 베드로를 동참시키십니다.
베드로는 텅 비어버린 이 마음을, 이 영혼을, 이 존재를 가득 채울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전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채워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실제로 자신을 채워주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수의 부르심을 따라갑니다.
배도 그물도 다 버려두고 말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빈 영혼을 채우십니다.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기대를 다 부숴내시고
진짜 기대해야 할 것을 기대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