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노예였어요.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를 자기 아들, 자기 심장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오네시모의 원래 주인인 빌레몬에게도 노예가 아닌 형제로 맞이해주라고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오네시모의 정체성이 변화된 것은 복음 때문이었어요.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하나님의 가족, 한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바울은 오네시모을 부르는 말을 통해 빌레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이 세상에서는 사랑 받기 위한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주셨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며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요.
그 사랑은 나에게만 향하지 않고 함께 하나님의 자녀인 다른 친구들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기 때문이에요.
바울은 빌레몬에게 진 오네시모의 빚을 자기 앞으로 계산하라고, 자기가 갚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이미 빌레몬도 바울에게 많은 빚이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겠다고,
앞으로 자신이 빌레몬과의 관계를 통해 오네시모의 빚을 감당하겠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통해 빌레몬은 자신이 곧 오네시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께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죄의 빚을 졌지만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셔서 빌레몬의 빚을 갚아주신 것이죠.
바울이 그 예수님의 이야기를 빌레몬에게 보여주었을 때, 빌레몬도 오네시모를 그 복음 안에서 한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보여줄 때,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따라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서로에게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살아가요.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서로에게 들려주며 함께 천국을 경험해요.
우리는 교회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