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여자의 죄를 사하여 주셨던 그날 이후로도
예수님은 언제나처럼 갈릴리에서 가르치시는 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큰형 예수의 탁월하다는 설교를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막3:21)
하지만 인산인해로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가족들은 예수를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가족이 왔다는 소식은 뒤에서 앞으로 전달되어 예수님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여있는 사람들 앞에서 “내 가족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찾아온 가족들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해졌지만,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건 예수님이 가족들이 찾아온 이유를 아시고 서운한 마음에 의절하겠다 선언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가족을 뛰어넘는 영원한 가족, 진정한 가족이 따로 있음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육신의 가족을 만나는 일은 잠시 미루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를 나눈 육신의 가족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가족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것을
가족의 만남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원하고 진정한 가족들은 바로 예수께서 훗날 십자가의 피로 사실 사람들,
지금 예수님 곁에서 그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곧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그의 제자가 될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람들’의 대표로 몇몇 여자들의 이름을 들려줍니다.
첫 번째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 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귀신에 들렸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영육 간에 완전한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던 귀신들에게서 그녀를 구조해 내셨습니다.
은혜를 입은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섬겼습니다.

두 번째 여자는 요안나입니다.
그녀는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였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대로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왕의 신하가 이 부부를 말한다면
구사와 요안나는 자신들의 아들을 살려주신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요안나는 고귀한 신분의 귀부인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섬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여자는 수산나입니다.
그녀는 특별히 비천하지도 특별히 존귀한 신분도 아닌,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섬기던 이름 없는 여자들을 대표할 만한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지금이야 여성들의 이름과 그들이 섬기던 중요한 역할이 강조되어 기록된 것이 놀랍게 읽히지 않지만,
당시로선 여인들의 활약을 언급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급진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여자들의 인권이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어떤 사회적인 일의 결정에 참여하거나 투표할 권리는커녕 증인의 역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숫자를 셀 때도 여성의 숫자는 세지 않았습니다.
유대에서뿐 아니라 헬라와 로마 문화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남성보다 열등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별을 초월하여 이 여인들의 역할과 활약을 강조합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소유로 섬겼습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달랐을 테지만 여자들은 모두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섬겼습니다.
아마 물질적인 부분의 섬김을 기준으로 한다면 고위 관리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가장 많은 부분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안나가 아니라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언급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 공동체가 신분과 빈부를 뛰어넘은 공동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분의 차이와 빈부의 격차를 생각한다면 사실 요안나와 마리아는 비교 대상이 못됩니다.
두 여인에겐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도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람은 섬기는 자리에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함께하는 분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 은혜를 입고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기로 하면,
성별이나 신분의 귀천이나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어 함께하게 됩니다.
즉,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란,
예수와 함께하는 사람들, 함께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가족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