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롭에게 쫓겨 도망칠 때 지은 시입니다.
한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던 다윗이었지만,
그는 지금 백성들에게서 그 많던 인기와 신뢰를 모두 잃었습니다.
압살롬은 반란을 준비하는 4년 동안 백성들의 마음을 조금씩 훔쳐 오고 있었지만, 다윗으로선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아끼던 신하들 중 상당수도 압살롬에게 돌아섰습니다.
다윗은 정신차려보니 사방이 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을 따라 반란에 가담한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우신 왕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의 왕을 스스로 선택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다윗을 향해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 넘기셨던 것처럼,
지금 다윗이 그의 아들에게 쫓기고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왕위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여 말합니다.
그것이 다윗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 관계를 숨기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던 일들은
다윗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불의한 왕이 되게 하여 이런 위기의 순간에 대응할 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말처럼 지금 다윗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윗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불의한 죄인이요,
민심을 잃어버린 실패한 정치가이고,
신하들의 마음을 잃은 실패한 리더이며,
무엇보다 자녀 양육에 실패한 아버지입니다.
부모로서도 왕으로서도 실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생명의 위협과 정체성의 공격을 받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보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윗은 일어나 공격해 오는 대적들을 상대로 하나님께서도 대응하여 일어나 싸워주실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만큼은 자신을 부끄러워하시거나 버리지 아니하시고
승리로써 당당하게 자신의 머리를 들어주실 분이라는 그의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성산에서부터 올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나올 때 다윗을 따르던 제사장들은
다윗의 왕위 정당성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상징성을 위하여 언약궤를 메고 예루살렘을 나서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언약궤를 들고 가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 제 기능을 할 때에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은혜로 쳐다봐 주시며 함께 하시리라는 것을 다윗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니,
다윗은 성전의 제사와 제단 앞에 서 있는 언약궤를 통하여 죄 씻음받기를, 그렇게 은혜받기를 소망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믿음은 막연함이 아니라 자신이 두고 온 언약궤를 향한 분명한 소망의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믿음을 시3편의 노래로 기도하면서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해 주신
창세기 15장의 장면이 바로 시편3편의 모티브가 된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에게 땅을 주시고 자손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에 대하여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원래 언약이란 짐승들을 잡아 반으로 갈라놓고 언약의 당사자들이 그사이를 함께 지나며 맹세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타는 횃불과 같은 모습으로 쪼개진 짐승들 사이를 홀로 지나시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잘못으로 언약이 실패될 위기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자기 몸을 쪼개서라도 이 언약을 지켜 완수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의 계승이 바로 번제와 같은 성전의 제사이기 때문에
다윗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기대함입니다.
다윗은 비록 부족하고 실패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제단에서 모두 해결하시고 기억지 않으실 분이심을 바라본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그날 새벽, 다윗처럼 두려움 속에서 신음하듯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시던 우리 주님은 두려움에 머물러 있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두려움을 바꾸어 결국 승리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믿음과 기대의 이 노래는 훗날 자기 몸을 찢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로써 성경을 통해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통제하거나 부정하거나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 사랑 앞에서 두려움이 다루어질 때만이
우리는 내 영혼을 좀 먹는 불안을 이겨내고 당당히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펼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두려움 속에서 우리의 고개를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