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배를 타고 거라사인들의 지역으로 향하셨던 예수님은 다음 날 아침에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자신의 12살 된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딸을 살려달라 간구합니다.
위급한 상황에 예수님은 야이로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예수님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예수님 곁에서 그의 옷자락이라도 스치듯 만져보려 애썼습니다.
덕분에 이동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은 타들어 가듯 초조했을 테지만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갑자기 멈추어 서셔서 주위를 둘러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며 두리번거리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서로 밀치고 당기고 있다며 어떤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내게서 능력이 나갔다”며,
죽어가는 딸을 둔 아버지의 타는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 특정인이 자진하여 나서기까지 멈추어 서버리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지만 단 한 사람만이 병 고침을 얻었기에,
모두들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한 여자가 두려움에 떨며 예수 앞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자였습니다.
혈루증이란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을 말합니다.
아마도 부인과적인 질병으로 인해 하혈을 하고 있었을 그녀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과 불편함 때문에 고생하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상 피가 멈추지 않는 유출병은 부정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것이 닿는 모든 것들이 부정해지는 것이 율법에서 말씀하시는 정결법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5장에서는 성경의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하여 이 부정한 사람이 만지는 모든 것들이 부정해진다고 경고합니다.
그가 누웠던 침상, 앉았던 의자, 사용한 그릇 등등이 모두 부정해지며, 그렇게 부정해진 물건을 만지는 사람조차 부정해집니다.
그릇이라면 깨뜨려야 하고, 물건이라면 깨끗이 씻은 후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없었으며,
사람이라면 몸을 씻고 그날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녀 때문에 부정해진 사람이 있다면 여간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나 한두 달이 아니라 무려 12년간 매일 같이 주변인을 부정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왔으니,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제대로 안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인생은 문둥병자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지러 나온 이 순간에도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그들을 부정하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분노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며 그녀에게 “평안히 가라”고 완전한 평안을 약속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그녀가 나설 때까지 멈추어 서셨던 것은,
그녀가 단순히 병만을 고치고 돌아가길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저 ‘능력의 옷자락’으로 남으시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 받은 은혜의 증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요구하심으로써
‘능력에 대한 믿음’을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정한 것에 닿는 모든 것들이 부정해지는 것은 율법에서 밝히신 정결법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그녀가 닿았을 때 그 모든 것은 반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부정함이 오히려 거룩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율법의 원리를 무시하고 그녀를 정결하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율법에서는 단 한 가지 경우에 한하여 부정한 것이 닿았을 때 오히려 거룩해지는 경우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번제단입니다.
그리고 제사 드릴 때에 사용하는 성전의 거룩한 기구들입니다.
죄악을 짊어지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태워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현장에선 부정한 동물의 사체에 닿았다고 부정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부정한 그것들이 번제단에 닿았을 때 도리어 거룩해집니다.
성전이 그토록 거룩한 이유는 대속죄일에 성막과 제단을 위해 속죄제물로 드린 어린 염소의 피를 발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전 기물에 닿게 되는 모든 부정한 죄악들을 짊어진 아사셀 어린 염소가 광야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기에,
그가 우리의 죄악을 위해 그 물과 피를 십자가 위에 쏟아주셨기에,
십자가에 닿는 모든 이들이 그 죄악으로 인한 부정함에서 깨끗해짐을 얻고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그 십자가에 닿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그 사랑을 신뢰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