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길의 끝에 도달하게 될 목적지가, 길에서 벗어남 없이 걸어온 이들에게, 즐거운 상급으로서 주어질 것입니다.
질서 위에서 얻게 되는 즐거움은 기쁨입니다.
길은 기쁨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길 위를 걷다 보면 때로 목적지가 막연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목적지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바대로라면 이 길의 끝에 생명과 구원이 기쁨으로써 주어진다지만, 그것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목적지보다는 현실이 더 크고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땐 길 위에 있는 것 같아도 마치 인생을 헤매는 것처럼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길이 맞는가?!,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주저함은
우리에게 기쁨의 즐거움이 아니라, 불안, 걱정, 근심, 회의감마저 들게 합니다.
길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즐거움은 원래 잘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즐거움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이요, 감추어진 즐거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지혜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인생의 즐거움을 우리의 현실이 되도록 하게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만이 길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지혜가 길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설령 미래가 보이지 않고, 가치가 보이지 않고, 평안이 보이지 않고, 즐거움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구원과 생명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이 가신 길이라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믿음과 지혜가 우리를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혜가 없는 사람은 길에서 벗어나기가 쉽습니다.
비록 생명과 구원의 길이 아닌 사망의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경사로일지라도,
길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름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는 이들의 눈에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입니다.
그간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했던 부담을 벗는 것만으로도 어리석은 이들에겐 즐거움이 됩니다.
포기하면 편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포기하면 편해집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내려오면 편해집니다.
그러나 질서를 벗어나 누리는 편안함과 즐거움은 기쁨이 아닌 쾌락일 뿐입니다.

잠언은 길에서 벗어나도록 부추기는 쾌락의 유혹을 음녀라고 부릅니다.
어머니의 음성 같은 지혜와는 상반되는 여인입니다.
길에서 벗어나게 할 정도로 음녀는 매력적입니다.
애초에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한눈을 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관심과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길에서 벗어나게 한 음녀는 가나안 땅의 문화와 종교였습니다.
하나님은 40년 광야 생활 동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시고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지켜주신 분이었으나,
가나안 땅의 풍요를 경험한 그들은 젊어서 얻은 배우자를 저버리는 무정한 사람처럼,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신들을 음란하게 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율법으로 명하여 주신 성막을 제쳐두고 가나안 사람들처럼 산당을 만들어 그곳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하나님을, 때로는 바알과 아세라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누리던 풍요로움이 부러웠던 것입니다.
비를 내리게 하고 열매를 결실하게 한다는 가나안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것이 더 빠르고 좋은 길로 여겨졌습니다.
현실의 풍요로움을 갈망하는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인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혜 없음을 책망하며 돌이켜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길을 완주하길 기대하며 경고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이들은 당장의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위해 길에서 벗어나기 일쑤입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엔 답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동력으로 삼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 즐거움이나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질서를 벗어난 즐거움은 기쁨이 아니라 쾌락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의 끝에서 얻게 될 진정한 즐거움의 기쁨만을 바라보며,
그 즐거움을 오늘로 당겨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따라서 지혜란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구원에 도달하게 하는 길, 십자가의 길, 제자도의 길,
그 길의 끝에 놓여진 기쁨을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길을 지켜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