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4장에서 잠언 기자는 지혜가 세대를 거쳐 전수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잠언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말’을 빌려 지혜를 설명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라, 무엇을 주고서라도 지혜를 얻어라, 지혜를 마음에 두라, 그리고 마음을 지키라”는 간절한 호소를
아들과 그의 아들, 곧 후손들에게 전합니다.
이는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대가도 없이 그저 순수한 사랑과 진심으로 전해주는 훈계이며,
믿음의 계보를 따라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보와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말마따나 무엇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구해야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지혜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혜는 천지를 창조하신,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마음속에 있다면 그 지혜는 그를 살게 합니다.
지혜가 그를 지킵니다.
지혜를 구하고 마음을 지키려는 이를 실제로 지키는 분은 지혜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지혜가 자리 잡아야 할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이란 감정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성적 사고를 말하는 것일까요?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브”는 넓게는 우리의 내면을 말합니다.
그리고 좁게는 그 사람의 깊은 중심을 말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감정보다 더 깊은, 이성보다 더 깊은 사람의 중심입니다.
즉 감정과 이성 너머에 있는 우리의 본성이 곧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서 이성도 나오고 마음에서 감정도 나옵니다.
하나님이신 지혜는 감정이 아닌 이성이 아닌 우리의 중심에 자리하십니다.
우리의 이성도 지혜이신 하나님이 좌정하신 이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도 이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이신 지혜를 따라 주님 마음대로 사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지혜의 마음에서 시작하지 않는 것들은 무엇이든 창조의 목적과 무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가 마음에 있다면, 그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들이야말로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에 지혜가 없다면, 그 마음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들은 생명력 없는 허탄한 것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아들들에게 지혜를 마음에 두고 그 마음을 지키라며 간절히 훈계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나 마음속에 지혜가 없는 이들은 그 마음에 지혜 대신 엉뚱한 것을 두고 살아갑니다.
때문에 그 속에 생명력 없음으로 인하여 그 마음에 닿는 것들마다 오히려 시들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마음에 지혜 대신 자녀를 두고 살면서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건 정말 넌센스입니다.
마음에 지혜 대신 돈을 두고 살면서 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돈 버는 것만을 인생의 목표로 두고 사는데도
인생이 파괴되지 않고 안락하기를 바라는 것도 넌센스입니다.
마음속에 지혜가 있지 않다면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허탄하고 허망할 수밖에 없음을 경험으로도 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어둠 속에서 길이 아닌 곳을 걸으며 걸려 넘어져도 무엇 때문에 넘어졌는지 알지 못한다고 잠언은 이야기합니다.
이로 보아 인생은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할 수 없기에 그저 과오를 반복할 뿐입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결과는 다르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바꿀지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자녀가 아닙니다. 재물이 아닙니다. 명예와 영광이 아닙니다.
지혜가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 마음에 가득한 소망이 될 때,
우리의 능력으로 지킬 수 없는 마음을, 인생을, 지혜가 지켜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좌정하시고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