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과 벳새다를 떠나 갈릴리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사람들이 더러는 엘리야라고,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정말 몰라서 질문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을 끌어내시기 위해 질문을 던지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고 대답합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를 말합니다.
메시야는 구약성경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보내실 사람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그동안 가르치셨던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여러 기적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제자들과 함께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함께 겪어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고백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다고 판단하시고,
제자들에게 감추어진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 질문들로 이야기를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보내신 하나님의 메시야라는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제야 그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메시야의 진실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실 구약 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설명해 주셨지만,
사람들은 파편적인 가르침들을 하나로 엮어낸 지식을 갖추지 못하였고 오히려 외면하려 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했던 ‘메시야의 진짜 하실 일’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안에 감추어져 있던 진짜 구원 계획을 제자들에게만 살짝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삼 일 후에 부활하게 될 것까지도 모두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다 소화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탓입니다.
은유와 상징으로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 주신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은유가 아닌 실제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혼란을 정리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 말은 먼저 가실 예수께서도 십자가를 지실 것임을 전제로 한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라니, 십자가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는다는 율법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리는 자의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파괴시키는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것은 반역의 무리로 처형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말인즉슨 ‘하나님 나라’의 구현은 실패하고 패배자가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인 상황에서라면,
모든 주동자는 승리만 바라보도록 믿음을 강화하여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독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앞두고 예수님은
시작부터 패배를, 실패를, 십자가를, 처참한 최후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패배가 목적인, 십자가가 목적인, 죽음이 목적인 이 길을, 예수님은 가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너희도 모두 이 길을 가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패배하고 실패하여 조롱당하고 처형될 메시야라니,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버림받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니,
자기 모순적인 이 명령을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롱과 수치가 가득한 암울한 미래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패배를, 실패를, 십자가를 지게 될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대화를 오병이어 사건 바로 직후에 있었던 일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벳새다에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기까지 그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생략되고
마치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였던 기적의 사건 바로 뒤에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오병이어의 주제와 이 대화의 주제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모든 능력과 권위를 공급하는 근원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된 우리에게,
생명의 공급도 예수님이심을, 그의 십자가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근원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은, 십자가는 패배를, 실패를,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죽어야 사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패배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실패 같아 보이나 성공한 인생이 됩니다.
제자도란,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안에서 내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시되 십자가의 은혜로써 채워주시는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