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의 벳새다를 떠나 북쪽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역에 이르러서 제자들과 중요한 대화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한 베드로의 고백을 방아쇠 삼아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 즉 메시야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미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었던 일들이지만 모두가 눈감아 넘겨버렸던 예언에 관한 것들입니다.
메시야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죽어야만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가슴에 큰 충격으로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시 살아나야 할 것도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의 귀에는 특별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자기 십자가를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을 지게 된다는 것은 반역을 저지른 죄인임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패하고 연루자들 모두가 함께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가게 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패배와 실패의 죽음이 정해져 있는 하나님 나라의 길을 굳이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이제라도 예수를 떠나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심란한 제자들을 이끌고 더욱 북쪽으로 향하셨습니다.
일주일 정도를 걸어서 이동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산 밑에서 예수님 일행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중 일부만 데리고 활동하신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앞서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실 때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었습니다.
메시야가 어떤 분이신지를 목격하게 할 목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날은 훗날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날을 여러모로 닮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깊은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산을 오르면서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느라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탓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던 중 어느 순간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입고 계신 옷도 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빛에 의해 하얗게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의 모습을 유감없이 노출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영광의 빛이 사방을 덮자,
제자들의 감긴 눈커풀 안쪽까지 가득 찬 빛으로 인해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로써 이 산에서 있었던 일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날과 대조적으로 겹쳐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훗날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십자가를 지고 끌려다닐 이 연약한 남자가 바로 영광의 하나님이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여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고 계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모든 성경의 계시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계시의 대표들이 계시의 대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모세는 충동적으로 초막 셋을 짓고 이곳에서 함께 하자고 예수님께 제안합니다.
걱정과 근심, 갈등과 고민 없이, 미래에 대한 염려나, 십자가를 져야 할 두렴 없이 살고 싶은
그의 본심에서 터져 나온 충동적 제안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바라며 산에서 내려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베드로를 막아서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이 산을 덮으셨습니다.
마치 성막과 성전에 가득하던 구름처럼,
시내 산에 임재한 하나님의 영광을 구름으로 둘러싸 장막으로 삼으시던 흑암처럼,
하나님이 구름을 둘러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장막을 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려 초막을 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사람들 곁에 장막을 쳐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장막을 치기 위해선 이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셔야 합니다.
고난당하고 버림받고 죽임당해야 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별세란 ‘엑소돈’ 즉 ‘출애굽(엑소더스)’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께서 죽임당하심은 출애굽의 완성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구원의 모티브로 사용되던 출애굽 사건은 그제서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은 그제서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름이 지나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만 보입니다.
모든 게 다 사라지고 예수만 보일 때,
그제서야 산을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예루살렘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예수만 보일 때 우리는 주와 함께 십자가를 지러 갈 수 있게 됩니다.
제자도의 진정한 용기는 교회에서가 아니라 산을 내려가는 길목에서 발휘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산을 내려갈 이유와 동기와 목적과 용기가 되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