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가시던 중, 열두 명의 제자들 외에 따로 70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12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당부하셨던 사항들을 70명에게도 다시 반복해 말씀하시며 강조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고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도록 명령을 받은 후,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중 지나가시게 될 동네와 지역으로 먼저 보내졌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던 선지자 요한처럼,
70인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그리스도의 행차에 앞서 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할 사람들은 한 명에서 12명으로, 12명에서 70명으로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만약 성경에 누가복음 10장의 70인을 파송하는 장면 없이 누가복음 9장의 12 제자를 파송하시는 장면만 있었다면,
아마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고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사역은 특별한 몇몇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을 겁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목사나 선교사 같은 성직자이지 나는 아니라고,
나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70인의 제자들을 보내시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억눌린 자를 자유케하며 회복시키는 이 사명을 위해 보내시는 사람들 중에
결코 우리가 제외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70명을 보내신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보내신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70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숫자입니다.
창세기 46장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식구들은 총 70명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스라엘의 장로도 70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0장에서 인류가 재건되는 과정에 등장하는 민족들의 이름이 총 70개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70은 모든 민족을 상징하는 열방의 숫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70명을 제자로 부르셔서 앞서 보내신다는 것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부르시고, 모든 민족에게로 제자들을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으시고 제자로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제자로서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제자로서 부르심은 보내심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주의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방법으로써 부르십니다.
보냄을 받지 않고 제자로 부름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섬기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이 제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깨달아 알게 하고 묶인 자를 자유케하며 부서진 영역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복음 사역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 제자로 부름받아 나선 모든 이들이 순종해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도록 부르셨습니다.
붙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러 이집트로 보내시는 방법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대면하였을 때 하나님은 ‘누가 나를 위해 갈 것인지’를 물으셨고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하고 나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보내심입니다.
보내시려고 부르셨고 부르시려고 보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교회로 부르심이란 세상으로 보내심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을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양이 이리 가운데로 지나간다면 물어뜯겨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리 같은 세상에 먹잇감으로 제자들을 던져준 것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11:6에서 ‘그날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승냥이가 어린 양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왜냐하면 버림받아 죽임당해야 할 우리 대신 그리스도께서 버림받으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임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대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의 죄악을 전가 받아 짊어지고 광야 가운데 버림 당하는 아사셀 염소처럼
세상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고 그가 죽임 당함으로 우리는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리 가운데 보내진 어린 양이 무사하고 건강해야
이사여서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이, 이리가 어린 양을 해치지 못하는 그날이 왔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보내심은 우리를 죽이시기 위해 보내시는 길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보내시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리 가운데로 우리를 보내십니다.
이리와 같이 우리를 헐뜯으려는 세상 앞에서 그 어떤 역경과 환란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소망을 빼앗기지 않고 절망과 좌절의 자리에 쓰러져 포기하지 않도록,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마음을, 인생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이리 가운데서도 건재한 어린 양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증명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