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파송 받았던 70인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고 귀신들을 쫓아낸 후
승리와 성공의 겸험들을 가지고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방문하실 마을들마다 앞서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것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계신 예수님에 대한 선포,
즉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동일한 것으로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 앞에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은 예수님의 임재가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통치 아래에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대적자가 될 수 없고 방해자가 될 수 없기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 되시는 예수의 이름 앞에서 귀신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져 이 땅위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바닥을 기고 있는 뱀과 전갈을 밟을 권능을 주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성경은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총 세 종류의 하늘 개념을 사용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늘을 세 개의 층으로 이해합니다.
첫 번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 새들이 활동하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위의 실제적인 하늘과 우주입니다.
두 번째 하늘은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들의 활동 무대가 되는 하늘입니다.
그러니까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는 영적인 세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늘은 오직 하나님만이 좌정하시는 하늘입니다.
이런 이해는 세계를 물질적 세계와 영적인 세계로 구분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적인 세계조차 초월하시는 분으로서 이해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졌다고 할 때 여기서의 하늘은 둘째 하늘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존재들이 활동하던 둘째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은 내동댕이쳐진 이 땅에서 세를 과시하려 해왔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탄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은 첫째 하늘, 즉 이 땅위의 세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호랑이 없는 숲에 이리가 왕 노릇한다고 사탄은 자기가 왕이라도 된 듯 이 땅위에 군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부터 이 땅으로 임재하여, 왕 노릇하던 거짓 임금에게 진정한 임금이 행차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땅에 곤두박질쳐서 기어다니던 사탄, 곧 옛 뱀은 결국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처참히 즈려 밟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항복은 이러한 승리가 도래하였음의 증명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이 항복하는 일에 기뻐하지 말고,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승리의 소식은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에 대한 증명일뿐,
기쁨의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근본은 하나님 나라의 명단에서 우리가 발견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써 이루실 일입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를 그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놀랍고 신비한 은혜입니다.
즉 귀신이 항복하는 것에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행한 일들과 성취와 성과들로 인해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여 주신 은혜로 인해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의 사명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소식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고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진정한 기쁨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됩니다.
귀신의 항복마저도 이 기쁨 앞에서 내세울 공로가 되지 못합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도 주님 앞에 내세울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우리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특별하고도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름이란 개인의 정체성과 대표성을 총괄하는 것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이름을 정체성의 총아로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백여 년 전만 해도 조선시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불리는대로 불려질 뿐 의미도 개성의 함축도 정체성의 구성도 그 안에 의미로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하늘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동명이인으로 헛갈릴 일이 없습니다.
그곳에 기록된 이름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총체적 자아이고 정체성의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 기쁨의 실체인 것입니다.
이외의 다른 무엇도 우리의 정체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죄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모든 것을 즈려밟고 오직 하늘나라의 명단만을 정체성으로 삼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우리는 그 이름이 태초 전부터 하나님 나라의 명단에,
성령의 가슴에, 그리스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로 인해 힘을 얻어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