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비유로써 기도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치시던 예수님은 이번엔 말 못 하는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귀신을 내쫓는 것은 갈릴리에서 병자를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주요 사역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곳 유대 지역에서도 예수님은 동일한 사역을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무리들은 여전히 놀랍게 여겼지만, 그런데 이번엔 갈릴리에서와는 반응이 사뭇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그러니까 귀신을 쫓아낸 이 행위가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서 행한 것인지 증명하라는 말입니다.
즉 이들에게 있어 귀신을 쫓는 방법이란 오직 하나님을 힘입는 방법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도 이미 가나안 땅의 무당들이 샤머니즘적인 방법으로 바알세불의 이름을 불러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도 본 적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들 또한 예수의 이름과 권능에 힘입은 것이 아니어도 나름의 의식으로써 귀신을 쫓아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너희 아들들은 무슨 수로 귀신을 쫓은 것이냐’고 물으시는 것을 보면
바알세불의 이름을 힘 입지 않았어도, 예수의 권능과 능력이 아니었어도, 귀신을 쫓는 행위가 이미 수차례 시행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기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귀신이 나가고 난 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쫓겨났던 귀신이 물 없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청소되고 수리된 집으로 일곱 마리의 귀신을 데리고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정한 귀신은 자신을 정결케 하는 정결 예식에 사용될 물이 없는 곳만을 찾아다닙니다.
물이 없으면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씻어낼 수 없습니다.
물 없는 곳은 광야처럼 황량한 곳입니다.
사람은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입니다.
물 없는 곳이란 물댄동산의 반대되는 표현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반대되는 곳입니다.
귀신은 가장 황량하고 황폐하며 버려진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가장 황폐하고 추악하고 끔찍한 장소를 찾아 인간에게 들어가 그 영혼을 지배합니다.
왜냐면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추악하고 황폐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악은 언제나 최상의 선이 훼손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를 태우는 것에 비해 숭례문을 방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범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타락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황폐하고 황량하고 더러운 것입니다.
나간 줄 알았던 귀신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집이 청소된 것을 보고선 이전보다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버리기 위해 일곱 마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귀신이 나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알세불의 이름으로는 귀신이 쫓겨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알세불이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그럴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즉 설령 바알세불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났다 하더라도 그건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라
오직 사탄이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벌인 짓이라는 의미입니다.
나가도 나간 게 아닙니다. 잠시 비어있던 그 자리로 곧 일곱 배의 귀신이 들어올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일만을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귀신을 쫓아내신 바로 그 자리에 물과 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귀신이 떠나가게 되었든 중요한 건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귀신이 쫓겨나고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귀신이 떠나가고 난 다음을 주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어 그 마음을 채우시고 지키실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귀신이 나가고 난 다음, 예수가 아닌 성령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져있다면,
결국 인간은 사탄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시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그의 속에서 더 영악하게, 문제없는 삶인 것처럼, 어쩌면 티도 안 나게, 더 치밀하고, 더 은밀하고, 더 악랄하고, 더 자연스럽게, 더 신령하게,
그리하여 종말에 가서는 그를 파괴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이 떠났다는 것 자체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명단 아래 발견되는 것만을 기쁨의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귀신이 떠나고 난 후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누가 그 마음을 지킬 것인가,
누가 그 마음에 주인이 될 것인가,
우리는 누구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에 세워져 성령께서 그를 지키시는 단계까지 닿지 못한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 일구어낸 문제 해결이라 할지라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상담도 복음에 닿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라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의학적 치료도 복음에 닿지 못한다면 일시적인 치료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죄의 삯인 사망 앞에 모든 것을 빼앗기게 할 뿐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오직 그분만이 우리 안에 물과 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