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모여드는 무리를 향하여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객관적 기준으로 보았을 땐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였습니다.
구약을 통한 역사적인 모습으로 보면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메시야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종교적 열심이 특심했고, 어떤 사회보다도 가장 도덕적이었던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평가하신다면,
이 세대가 얼마나 포악하고 폭력적인지 사악한 범죄 사건들의 목록을 나열하며 악한 세대임을 증명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이 세대가 악한 이유를 패역한 사건들의 나열에서 찾으시는 게 아니라
이들이 표적을 구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 못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즉 귀신을 쫓는 행위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증명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증거를 대보라는 논지입니다.
즉 예수께서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부르신 이유는 표적을 구하는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제기한 의혹의 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간 율법에 순종했노라는 자부심과 종교적 열심과 같은 자신들의 공로를
도무지 인정해 주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그들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성경적인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지식과 방향성을 수정하려 하지 않고,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저 한 개인의 사견으로 치부하려 하였으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그동안 보여주셨던 기적들과 표적들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훼손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박수무당처럼 예수가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거짓 프레임을 뒤집어씌워 예수님을 폄훼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이 뚜렷한 증거를 주지 않으셔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셔서, 확실한 표적을 주지 않으셔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의혹 제기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모든 것을 예수의 탓으로 돌립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세대가 악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는 기적의 행위로서 언제나 하나님께 보냄 받은 메시야이심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이 정도의 표적과 기적이라면 누구든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른다는 우리말 속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토록 찬란하고 눈부시게 많은 표적과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외면했습니다.
증거를 보고도 외면하려는 모습에서 그들의 악함이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요나 시대에 니느웨 사람들은 성경도 없고 선지자도 없었지만,
사흘 길은 걸어야 할 크기의 니느웨 성에, 단 하루 선포된 회개하라는 메시지 한 마디만으로 모두가 금식하며 회개하고 뉘우쳐 하나님께 구원을 얻었습니다.
땅끝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온 남방의 스바 여왕도 솔로몬과 단 며칠 간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언약에 대해 믿고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요나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신 분,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분,
요나보다 크신 이, 솔로몬보다 크신 이인 예수께서 직접 진리를 가르치시고 증거를 보여주시는데도
그들은 도무지 자신들의 악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빛이신 그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에게 삼켜졌다가 살아난 표적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사흘간 무덤에 삼켜지실 것이었기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일어나실 부활을 의미했습니다.
사실 부활이야말로 모든 성경의 계시가 기록된 궁극적 목적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아닌 생명의 권세이기에, 부활이야말로 사망 권세를 휘두르는 사단이 이길 수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표적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악한 사람들은 부활의 표적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증거가 부족하거나 결정적이지 않거나 모자라서 예수를 외면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심으로써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이미 증명하셨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 다른 표적을 더 요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눈과 등불의 비유로써 이토록 패역한 세대의 악함을 가감 없이 폭로하셨습니다.
계시가 부족하고 표적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등불을 아무리 많이 켜놓아도 눈을 감아버리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둠뿐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나 세상이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하여 자기 눈을 감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눈을 열어 계시의 빛을 내 속에 채웁니다.
예수 믿으세요.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눈을 여시고 성령으로써 믿음을 채워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