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점심을 잡숫고 나오시는 동안,
문밖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오전보다 더 많은 수가 늘어 수만 명이 운집한 상황이었습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향해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이 무리에 앞서 제자들을 먼저 가르치셨다는 것은
무리와 제자를 나누어 메시지 관리를 따로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구별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무리는 수만 명씩 모여 있지만 그들이 모여있는 이유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때문이거나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모여든 무리가 예수님께 바라는 결정적인 것은 결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경험이 그들이 모여든 까닭이었습니다(요6:26).
그들에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아닌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것들은 솔직히 관심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내 코가 석 자였을 뿐입니다.
지금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하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배만 채울 수 있다면, 그 속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무리를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겨진 것과 감추인 것은 곧 드러나고 폭로될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숨겨진 것은 반드시 드러날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 썩어가는 것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평토장한 무덤같은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의 죄악성이 백성들을 호도하고 선동하며 그 민낯을 드러내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점심시간 동안 각을 세웠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을 대적자로 만들면 어떻게 될지 제자들로선 두려워집니다.
몰려든 무리들은,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들이 충족되지 못할때 쉽게 선동되어,
예수님께 대한 실망을 그를 추종할 때보다 더 격하게 쏟아놓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면에 파묻혀있는 악독한 죄악과 부패한 탐욕이 드러나게 될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생각해볼수록 참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숨겨진 악독함과 패역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신 정말 두려워해야 할 자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자신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처럼 시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의 악랄함과 악독함과 탐욕의 죄악을 모두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평토장 한 무덤이나 만들고 선지자의 무덤이나 만들던 그들은 진정한 무덤인 게헨나, 곧 지옥에 던져지게 될것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헨나는 각종 오물과 쓰레기, 사형당한 범죄자의 사체를 소각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밤낮 꺼지지 않는 소각장의 불 꽃속에, 부패한 것들과 외식하는 자들을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겉으로는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내면 속의 탐욕과 죄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 앞에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마음속 깊숙이 숨겨져 있는 우리의 죄악뿐 아니라,
머리카락의 숫자까지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먹거리인 참새까지도 소비량과 개체수까지 모두 아시고 운영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은 없고 하나님께서 관리하지 않으시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운영하시고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겐 두려움을 넘어서는 희망이자 소망이 됩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 몰래 일어나는 경우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려움과 나의 고통과 나의 실패는 하나님이 고개 돌리고 계신 동안 몰래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운영과 통치에서 우리의 인생이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운영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인들의 결국과는 반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두려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인생을 은혜로 이끌어가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발생하는 곤란한 문제들은 결코 우리의 영혼과 인생을 망칠 수 없음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운영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치는 위협들은 하나님의 관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하나님이 미처 모르셔서 발생하는 실수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때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생명이 드러나게 됩니다.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