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편은 다윗의 개인적인 고통과 괴로움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토로한 탄원시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윗의 개인적인 기도는 관악기에 맞추어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다급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다윗을 이처럼 애타게 한 것인지 정확한 사건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다윗에게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걱정거리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다윗은,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의 격랑으로 탄식의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심정’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하기그’는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를 말합니다)
다윗의 마음은 분명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풍랑 앞에 돛단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 때문에 다윗이 이토록 애가 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윗을 이토록 갈등하게 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는 시편 5편의 노래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편 5편은 청각적인 심상들이 유독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말, 중얼거림, 소리, 기도, 기쁨의 외침, 혀, 입 등등
청각적인 시어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를 보면 다윗이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사람들의 ‘말’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언어로서 다윗을 공격해 왔습니다.
하지만 말로 하는 공격이었다고 해서 대적들이 다윗을 향해 욕설이나 비방, 협박과 같은
거친 언어들로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힘들게 했던 말들은 모두 매끈매끈하고 부드러운 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아첨하는 말이라고 묘사합니다.
(‘아첨’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할라크’는 원래 매끄럽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악인들이 하는 말의 특징은 거친 말이나 욕설이 아니라 세련된 말입니다.
부드러운 말입니다.
정말로 위험한 위협이란 드러나 있는 위험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감추인 위험입니다.
차라리 욕설이나 비방이면 주의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말은, 들을 때는 매끈하고 세련되고 달콤하게 들리지만,
그 속에는 상대를 쓰러트려 무덤으로 끌고 가려는 속셈이 감추인 말입니다.
다윗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거짓말하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거짓말이란 정말 그런 말들입니다.
달콤한 말들로 세련되게 꾸며진 말들입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입니다.
사기꾼이 던지는 미끼란 달콤하기 마련입니다.
듣고 싶고 믿고 싶은 말들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상대를 피 흘리게 하고 쓰러뜨려 무덤으로 끌고 갈 악독함이 서슬 퍼렇게 날 서있습니다.
원수들의 말은 아첨이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오만이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열심을 내며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것 마냥 자랑하는 것이 오만함입니다.
그들의 자랑을 듣고 나면, 조바심이 생깁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위기감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오만한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과 원수들의 말에 두려움을 안고,
밤새 시름시름 앓듯이 갈등하고 고민하던 다윗은 아침이 밝아오자 당장에 성전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는 매일 아침 드리는 상번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제사로 드릴 제물을 각을 떠 번제단 위에 늘어놓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참관합니다.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는 한국어 번역은 사실 원문을 직역하면 ‘준비하고 응시하리이다’ 라는 뜻입니다)
아침을 기다려 준비한 예배에 참관하는 동안 다윗의 기도는 어느새 걱정이 아닌 기쁨의 기도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경외함이 되었습니다.
걱정 근심의 탄원시가 기쁨의 찬양시로 변하는 것의 유일한 변곡점은
다윗이 번제단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배의 순간을 바라볼때 입니다.
번제단 위의 벌여놓은 제물은 아브라함과 횃불로 언약을 맺으실 때처럼 반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신실하지 않음과 거짓과 불순종으로 인한 언약의 파괴에 심판으로 응징하셔야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몸을 쪼개어 그 언약을 이루어내시겠다는 약속의 의미가 바로 번제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번제단 위의 예배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 언약을 완성하실 약속이 다윗 자신을 위한 것임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약속에 대한 신뢰가 현실을 압도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신앙의 현실 감각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겪은 이런 사적인 경험을 오직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함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시편 5편의 이 기도를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들’과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이 얻게 될 은혜의 통로라고 소개합니다.
다윗이 근심과 걱정 속에서 하던 탄식의 기도가 기쁨의 기도로 바뀌게 된 지극히 사적인 이 경험은,
모든 성도가 불러야 할 공적인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적인 경험이 공적인 즐거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실로 다윗의 기도는 개인적인 기쁨을 넘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를 위해 그 몸을 찢어주신 그리스도를 예배함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 언약의 완성이 우리의 것임을 경험케 하십니다.
예배는 우리의 신앙이 현실속의 것이 되게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의 탄식을 기쁨으로,
우리의 두려움을 경외함으로,
우리의 근심을 감사로 바꾸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