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서 점심을 잡수시며
식사 자리에 함께하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평토장한 무덤으로,
율법 교사들을 가리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자들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집 밖으로 나서실 때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은 당연하게도 예수께 거세게 항의하며 달려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집밖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자칫 살벌한 말다툼으로 번질뻔한 상황은 몰려든 무리로 말미암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인기에 짓눌려 사람들 앞에서 항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물러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을 가리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외식을 주의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지지하고 시인하는 사람들중에 자신들이 포함되는 듯 조용히 물러서는 그들의 모습을 꼬집어
끝까지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인자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인자를 부인하면 인자도 하나님 사자들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사실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지적하신 것과는 반대되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아닌 척 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예수님은 이어서 하시는 말씀을 통해
조금 전 본인이 하셨던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야기를 던지셨습니다.
‘예수를 거역하는 자는 사함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대체 예수님은 인자를 거역하는 사람을 부인하시겠다는 말씀일까요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얼핏 보기에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그 안에는 논리적 충돌이 아니라 진리가 숨겨져 있는 역설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을 피상적으로 흘려듣지 못하도록
모순 같은 충돌의 충격 속에 진리를 깊이 감추어 담아 전달하곤 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신다는 말씀도,
너희 중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는 자여야 한다는 말씀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도,
목숨을 구하려 하면 잃을 것이라는 말씀도,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는 말씀도,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도 모두 역설입니다.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 또한 역설입니다.
그렇기에 모순 같아 보이지만 모순이 아닌 진리의 깨달음이 깊이 숨겨져 있는 이 역설을
논리적 퍼즐로 풀어서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논리의 전후를 뒤집어 진리의 속살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혹 사함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받지 않아 성령을 모독하며 사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엔
때로 인자를 시인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즉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과
‘성령의 통치를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의 각각의 차이를 전달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계시의 영입니다.
성령은 율법과 성경의 모든 예언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시고 조명하여 알려주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정의로우심의 완벽함을 우리에게 제시하시어,
그 기준 앞에 인간이 얼마나 구제 불능의 크나큰 죄악인지를 폭로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인간 내면의 본성이 죄악뿐임을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이로써 인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죄악을 인지하고 인정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로가 내 안에 전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본성에 철저하게 절망한 사람은
이제 성령의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앞에 서게 되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나의 죄악보다 더 큰 은혜를, 나의 절망보다 더 큰 소망을 바라보게 된 사람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를 온전히 고백하고 사랑하는,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제자도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성령을 모독하고 훼방하고 소멸하는 죄’란
이런 제자도와는 반대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령이 계시하신 성경을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본성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
그렇게 자신의 본성을 신뢰하며 자신의 내면에 소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려고 믿음을 주셨음을 인정치 않고,
나의 본성이 예수를 선택하고 믿고 노력하여 얻어낸 공로라고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성령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사람,
그렇게 자신의 본성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경우가 주를 시인하는 듯 보이지만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외식하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베드로도 예수를 부인했고,
바울도 예수를 거역했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하심을 입었듯,
우리도 우리의 본성을 따르자면 예수를 모욕하던 사람에 불과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을 좌절시키고 십자가 앞에 세워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