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많은 경우 야식은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동안 힘들었던 일상을 위로해 주는 역할을 야식이 하기도 합니다.
야식은 역시 혼자 시켜 먹기 보다 역시 함께 있을 때 시켜 먹는 법이지요.
혼자서는 귀찮다는 이유로, 아깝다는 이유로 건너뛰게 되곤 합니다.
함께 할 때 더 맛있는,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먹을 때 행복을 느끼는 법이죠.
먹는 것은 종종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 즐거움을 위해 먹게 됩니다.
음식은 즐거움이자 위로이자 만족을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함께하는 사람에게 유대감과 연대감을 만들어주기까지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음식을 여러 가지 이유로 먹습니다.
때로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무언가 계속 당길 때가 있습니다.
헛헛하다고 말하며, 배는 부른데도 계속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삽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풀어야 하는 저 같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 위나 장이 빈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먹는 게 당깁니다.
정말 고프긴 고픕니다. 허기진 것이죠. 마음이…
마음이 고프면 배도 헛헛합니다. 아니 헛헛하게 느껴집니다.
마음에 만족이 없으면,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거나 불안함을 느끼면, 우리는 이미 차 있는 데도 불구하고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배를 채우려 합니다.
배는 부른데 배가 고픕니다.
그것도 일종의 허기이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허기. “나는 아직 배고프다”
심리적 허기가 있으면 많은 경우, 만족을 위해 마음을 채우려 하기보다 엉뚱하게도 배를 채우려 합니다.
문제의 근원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먹는 것으로 불만족을 해결해보려 합니다.
이런 습관이 지속되면 결국 지방간만 채워지겠지요.
반대로 마음이 꽉 차고 뿌듯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지요.
야식이 건강에 안 좋다는 말을 하려고 이 칼럼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비면 배가 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듯, 그래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엉뚱하게도 배를 채우는 행동을 하게 되듯,
사람은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엉뚱한 일에 몰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니요,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엉뚱한 일을 맹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체 헛된 일에만 몰두합니다.
사실은 영적인 삶이 빈곤하고 궁핍하고 텅 비어 허기진 데, 우리는 그 영적 상태를 돌아보지 못한 체, 다른 것에 몰두합니다.
통장에 현금이 많이 쌓이면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녀가 성적이 오르면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갖고 싶던 저 물건을 얻으면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물건이 왜 갖고 싶은 것인지 본인도 진짜 이유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욕심, 탐욕, 탐심은 채워보려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 탐심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는 체, 어디가 가려운지 몰라 일단 긁고 보는 다리처럼,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먹는데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허기처럼,
사람은 인생을 엉뚱한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모든 최선과 노력을 다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과 시도는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뿌듯하게 할 수 없습니다.
탐욕과 탐심은 우리의 영혼에 생명이 비어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심리적 허기와 같이 이름을 붙이자면 영혼의 허기라 할 만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정말로 그 영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식을 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떡을 주셨습니다.
이 빵을 먹으면 꽉 찬 사랑으로 포만감을 얻습니다. 만족을 얻습니다.
다른 것이 좀 비어도 괜찮아집니다.
마음이 꽉 차면 안 먹어도 배부른 것처럼, 영혼이 만족하면 우리는 다른 것으로 인생을 채우려고 노력하던 시도를 멈추게 됩니다.
이미 족하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펴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가득 부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