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은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고 가르치시고선
연달아 “나는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사명이 바로 ‘이 땅에 불 던지기’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이 이미 붙었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겠느냐”고 말씀하실 만큼 간절히 ‘불붙임’을 원하셨습니다.
‘불’은 그의 사명일 뿐 아니라 그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이 ‘불’이 ‘성령의 불’이기를 바랬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 ‘불’이라고 하시니,
메시야가 주실 ‘불’이란 ‘성령의 불’ 외에 다른 것이리라 생각하기란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는 수사학적 질문으로써
이 ‘불’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기대와 바람을 가득 담아 바라보려는 선입견을 살짝 거둬내고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신 이 ‘불’이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불이 만약 성령이라면 예수님은 불을 땅에 ‘던지지’ 않으셨을 겁니다.
성령은 그의 소유된 카리스마나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은 던지면 던져지는 물건이나 성자의 권위에 종속되는 열등한 종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부와 동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성자는 결코 성령을 ‘던지겠다’ 표현하지 아니하십니다.
실로 성경에서는 이처럼 성령을 가벼이 혹은 무례히 표현하는 곳이 없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또한, 이 불이 만약 성령이라면 예수님은 불을 ‘땅’에 던지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성령을 오직 제자들, 즉 예정된 백성들에게 보내어 주십니다.
즉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대상이 ‘이 땅’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오직 구원의 대상에게만 보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기 위해 아들이 오셨습니다.
땅은 구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훗날 사도 베드로는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신다’(벧후3:7)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구원의 대상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성령을 이 세상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결코 성령을 ‘땅’에 던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문맥상에서 드러나는 불이란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심판을 가져오실 분이십니다.
자신의 사명이 심판임은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신 바입니다(요9:39).
예수님은 ‘이 불을 던지기 위해 당신께서 받아야 할 세례가 남아있다’고 하셨는데,
누가복음에서 불과 세례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실 이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며(눅3:16),
이 불이 타작마당에서 쭉정이를 태우는 심판의 불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눅3:17).
세례 요한이 밝힌바 대로 예수님은 심판의 불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땅은 불로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며 선포된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반전 선언은
모여있는 무리에게뿐 아니라 본문을 읽고 있는 독자들조차 당황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임재하신 목적이 심판이라니 당황스러울 만합니다.
하지만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죄인들을 불사르는 심판이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 앞에서 그를 대면하고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죄인이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언제나 그는 죄악을 소멸하는 불로서 모든 죄악을 불태우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는 그 자체로 이미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정의의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서도 “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었습니다(출33:3).
왜냐하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의로운 하나님의 불꽃 앞에서 진멸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간곡한 기도와 부탁에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은 바로 성막이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막은 장막 밖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소멸의 불 가운데서 그들을 가려주어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성막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모두 십자가에서 담당하실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참여하게 하는 성령의 연합입니다(롬6:3,4).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란 우릴 위해 감당하실 십자가를 말함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심판의 불을 감당해 주셨기에,
예수의 십자가에 연합된 사람마다 이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삼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불타오르는 인생을 살지만 타버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누군가에겐 구원이, 누군가에겐 심판이 됩니다. 
예수 믿으세요.
심판의 불로 오신 이 땅에 오신 그분은 그의 십자가에 믿음으로 연합된 사람들에겐 구원의 불, 성령의 불이 되십니다.